항목 ID | GC065004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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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坪里 星山 李氏 烈行碑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 2016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범호 |
건립 시기/일시 | 1959년 - 금평리 성산이씨 열행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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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금평리 성산이씨 열행비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 2016 |
성격 | 열행비 |
양식 | 비석 |
관련 인물 | 김치묵(金致默)의 처 성산 이씨(星山李氏)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40㎝[높이]|36㎝[너비]|19㎝[두께] |
소유자 | 금녕 김씨 문중 |
관리자 | 금녕 김씨 문중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에 있는 성산 이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개설]
성산 이씨(星山李氏)는 금녕 김씨 김치묵(金致默)의 처로 시부모 봉양과 제사를 받드는 데 정성을 다하였고, 남편을 받드는 데에도 어김없이 법도와 예절을 지켰다. 남편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3일을 더 살게 하였으나 끝내 운명하였다. 이에 성산 이씨는 초종(初終)에 쓸 것들을 울면서 손수 마련하면서 아들에게 “너의 아버지가 죽던 날 바로 따라 죽어야 하나, 죽는 일이 사는 일과 같다는 옛 어른들의 교훈을 받들어 조석(朝夕) 공양과 초하루·보름 때의 삭망(朔望)에 올리는 전(奠)을 정성껏 하고, 탈상(脫喪)에 이르면 반드시 내 뜻을 이룰 것이다”라고 하였다.
아들은 감격하여 울면서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도록 위로하며 말렸다. 그런데 탈상하는 날 전(奠)을 마치고 아들에게 “나는 이제 너의 아버지를 따라갈 것이니, 집안의 모든 일을 네가 알아서 신중하게 하라”고 일렀다. 그날 자리에 누운 뒤 미시(未時)[오후 1시~3시]에 홀연히 눈을 감았다고 한다. 성산 이씨가 언행을 실천하여 절의(節義)를 지킨 언약은 천명(天命)과 인사(人事)가 일치하였던 것이다.
[건립 경위]
금평리 성산이씨 열행비는 1959년 기해(己亥)에 건립하였다.
[위치]
금평리 성산이씨 열행비(金坪里星山李氏烈行碑)는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 금척 마을에 있다. 무풍면 무풍 사거리에서 나제통문로 대덕 성주 방면으로 좌회전한 후 2.6㎞ 이동하면 오른쪽에 있다.
[형태]
높이 140㎝, 너비 36㎝, 두께 19㎝ 규모의 화강암 재질이다.
[금석문]
비명은 '학생 금녕 김공 치묵 배 유인 성산 이씨 열행비(學生金寧金公致黙配 孺人星山李氏烈行碑)'이다. 도유 대연헌 기해(屠維大淵獻己亥)[1959] 대량월(大梁月) 초길(初吉)에 진양(晉陽) 하천수(河千秀)가 글을 짓고, 증손(曾孫) 김재권(金在權)이 썼다.
[현황]
김치묵의 처 성산 이씨 열행비는 금녕 김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