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4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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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泰陽妻大邱葛氏烈婦碑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 45-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최범호 |
건립 시기/일시 | 1877년 9월 - 박태양 처 대구갈씨 열부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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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박태양 처 대구갈씨 열부비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 45-1 |
성격 | 열부비 |
양식 | 석정려 |
관련 인물 | 박태양(朴泰陽) 처 대구 갈씨(大邱葛氏)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86㎝[앞면]|55㎝[측면]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에 있는 개항기 박태양 처 대구갈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개설]
박태양(朴泰陽) 처 대구 갈씨(大邱葛氏)는 갈득성(葛得成)의 딸로 태어났으며, 가난한 집안에 서모(庶母)와 함께 사는 반남 박씨(潘南朴氏) 집안으로 출가하였다. 남의 집 삯품팔이로 살림을 꾸려가면서도 병환에 시달리는 남편 병구완에 정성을 다하고, 시부모에게 효도하며 살았다. 불행히도 대구갈씨가 나이 25세 되던 해 남편이 운명하자 남편을 따라 죽기로 작정하였으나, 늙은 시부모와 어린 자식을 생각하여 마음을 굳게 먹고 상을 치렀다.
어느 해 변덕이 심한 시어머니가 가난함을 핑계로 부인을 남에게 팔아넘기려는 흉계를 꾸미었다. 이를 눈치챈 부인은 엄동설한의 추운 겨울 밤, 어린 자식을 데리고 집을 나와 배고픔과 추위도 잊은 채 60리[약 23.56㎞] 빙판길을 맨발로 걸어 친정으로 피신하였다. 후에 시아버지가 운명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시댁으로 달려가 예제(禮制)에 따라 상을 치렀다고 한다.
[건립 경위]
1875년(고종 12) 열녀로 포상되었고, 1877년[정축년(丁丑年)] 9월 아들 박승문(朴勝文)이 비를 세웠다.
[위치]
무주군 안성면 중산 교차로에서 무주·영동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2.7㎞ 이동한 후 사전 교차로가 나오면 교차로에서 안성로 안성 방면으로 좌회전 후 400m 가면 사교 마을이 나온다. 박태양 처 대구갈씨 열부비는 사교 마을 가운데 언덕 아래 길가에 있다.
[형태]
석정려 형태이며 앞면 86㎝, 측면 55㎝ 규모이다.
[금석문]
비문은 ‘열부 유인 대구갈씨 행적비(烈婦孺人大邱葛氏行蹟碑)’라고 쓰여 있다. 1877년 정2품 자헌대부 예조 판서 김종한(金宗漢)이 글을 짓고, 6품 승훈랑(承訓郞) 탁지부 참서관(度支部參書官) 박내형(朴來蘅)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