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4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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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金氏褒烈碑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201-3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범호 |
건립 시기/일시 | 1941년 - 김해김씨 포열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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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김해김씨 포열비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201-3 |
성격 | 포열비 |
양식 | 석비 |
관련 인물 | 황호주(黃鎬周) 처 김해 김씨(金海金氏)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56㎝[높이]|47㎝[너비]|27㎝[두께] |
소유자 | 장수 황씨 문중 |
관리자 | 장수 황씨 문중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김해 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개설]
김해 김씨(金海金氏)[1856~1922]는 장수 황씨 황호주(黃鎬周)에게 출가하여 부덕(婦德)을 쌓아 정숙하면서도 효성이 극진하였다. 남편이 중병으로 고생하였는데, 온갖 정성으로 약을 구하고 시탕(侍湯)을 하며 병구완을 하였으나 효과가 없어 죽음에 이르렀다. 이에 손가락을 잘라 주혈(注血)하며 간호하니, 옆에서 지켜보던 열세 살짜리 어린 아들도 부인을 본받아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잘라 주혈로 효행하였다. 남편이 숨을 거두자 따라 죽기로 결심하고 예제(禮制)에 따라 장례 절차를 모두 마쳤다. 김해 김씨가 순사(殉死)할 것을 알고 있는 아들과 집안 식구들의 만류가 너무도 간곡하여 포기하였다. 대신 남편의 묘소에 초막(草幕)을 치고 아들과 함께 3년간 시묘(侍墓)를 마쳤다. 그 후에는 집안일과 자녀 양육에만 힘쓸 뿐 문밖 출입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건립 경위]
김해 김씨는 1926년 유림의 추천으로 포상되었고, 1941년 모성공회(慕聖公會)의 찬양문이 내려져 그해 비를 세웠다.
[위치]
김해 김씨 표열비(金海金氏褒烈碑)는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201-3번지 상북 마을 동북쪽 길가 산기슭에 있다.
[형태]
높이 156㎝, 너비 47㎝, 두께 27㎝ 규모의 화강암 석비이다.
[금석문]
비명은 ‘공인 김해김씨 포열비(恭人金海金氏褒烈碑)’라고 쓰여 있다. 1941년[신사(辛巳)] 가을 8월에 의성(義城) 김제흥(金濟興)이 글을 짓고, 달성(達城) 서석균(徐錫均)이 썼다.
[현황]
상북 마을 동북쪽 길가 산기슭에 효자 황의영 효자비와 함께 나란히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