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6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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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恩津宋氏 |
영어공식명칭 | Eunjin Songssi|Eunjin So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대길 |
본관 | 은진 - 충청남도 논산군 은진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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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무풍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
세거|집성지 | 두길리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 |
성씨 시조 | 송대원(宋大原) |
입향 시조 | 송봉수(宋鳳壽) |
[정의]
송대원을 시조로 하고, 송봉수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연원]
우리나라 모든 송(宋)씨의 도시조(都始祖)는 당나라의 호부 상서(戶部尙書)였던 송주은(宋柱殷)으로 알려져 있다. 은진 송씨는 송천익(宋天翊)을 시조로 하였으나 송천익 이후 세계(世系)가 실전되는 바람에 고려 때 판원사(判院事)를 지내고 공을 세워 은진군(恩津君)에 봉해진 송대원(宋大原)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은진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왔다. 송대원의 자는 천지(川至), 처음 이름은 송견(宋堅)이었다고 한다. 은진은 충청남도 논산군 은진면의 지명이다.
[입향 경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안성에 거주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거주지와 본관(本貫)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데 1759년에 편찬된 『무주부 읍지(茂朱府邑誌)』에는 은진송씨로 기록되어 있다. 이로 보아 은진송씨는 1759년 이전에 무주에 세거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주에 처음 입향한 은진송씨는 송봉수(宋鳳壽)로 추정되는데, 송봉수의 자는 인수(仁叟)이다. 은진송씨가 대전에서 번성하는 토대를 닦은 쌍청당(雙淸堂) 송유(宋愉)의 5세손이며, 생원 송여려(宋汝礪)의 손자로 현감 송세평(宋世平)의 아들이다. 관직은 자의(諮議)에 이르렀으나 벼슬에 나아가기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무풍으로 이주하여 살았는데, 그 자손들이 지역 내에 흩어져 살고 있다. 무주에 정착하여 살지는 않았으나 우국지사(憂國之士)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1836~1905]이 무주 구천동의 입구인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에 서벽정(棲碧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머물렀다.
[현황]
2015년 무주군에서 간행한 『통계 연보』에 의하면, 무주군에는 365명의 송씨가 거주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은진송씨는 251명이다.
[관련 유적]
무주 지역의 은진송씨와 관련된 대표적인 유적은 서벽정이다. 조선 후기 유교의 학맥을 계승한 개항기 때의 대학자인 송병선이 서벽정에 머물며 영남·호남의 선비들과 시국을 논하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서벽정은 1992년 6월 20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80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