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6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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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寅誠 |
영어공식명칭 | Yu Inseong |
이칭/별칭 | 유형(柳瀅),길중(吉中),화은(華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유호석 |
출생지 | 무주군 - 전라북도 무주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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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강학지 | 서벽정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 |
묘소|단소 | 유인성 묘소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 |
성격 | 유학자 |
성별 | 남 |
본관 | 문화 |
[정의]
근대 무주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길중(吉中), 호는 화은(華隱). 뒤에 유형(柳瀅)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활동 사항]
유인성(柳寅誠)[?~?]은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여 감영(監營)에 천거되기도 하였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스승의 사후에는 산장에 은거하면서 학문 연마에 전념하였으며 때때로 향교인 명륜당(明倫堂) 양사재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학문과 저술]
일찍이 서벽정(捿碧亭)에서 스승 송병선을 모시고 많은 유생들을 가르쳤는데, 항상 부강장(副講長)의 자리에 앉았다. 나라가 망한 뒤 송병선이 단식 끝에 자결하자 유인성은 은거하면서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이때 유인성의 거처는 책을 짊어지고 찾아와서 배움을 얻고자 하는 후학들로 붐볐다. 때때로 향교에 나아가 후학들을 가르치기도 하였으나 기력이 쇠하여 그만 두었다. 1966년 아들 유근춘(柳根春)이 유문을 모아 『화은 유고(華隱遺稿)』를 간행하였다. 하천수(河千秀)의 서와 유근춘의 발문이 들어 있는데, 석판본(石版本) 2권 1책이다. 현재 국립 중앙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화은 유고』 원문을 읽을 수 있다[청구 기호 BA3648-59-82].
[묘소]
묘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 뒤편 시목(柿木) 양지(陽地) 간좌원(艮坐原)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