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6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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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直鉉 |
영어공식명칭 | Gim Jikhyeon |
이칭/별칭 | 유당(裕堂)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동희 |
[정의]
근대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유당(裕堂). 충목공(忠穆公) 김여석(金礪石)의 후손이다. 아들 김영교(金永敎)는 법학을 공부하여 학부(學部)에서 교관을 지내다 세상이 날로 어지러워지자 물러나 거문고를 타며 글 읽는 것을 낙으로 삼았으며, 고을 사람들을 교화하는 데 진력하였다.
[활동 사항]
김직현(金直鉉)은 심성(心性)과 이기(理氣)에 대한 책을 주로 읽으며 학문을 연구하는 데에 전념하였으며, 덕행(德行)이 남다르고 문장력(文章力)이 넓고 풍부하였다. 고종(高宗) 대에 이조 판서를 지낸 문헌공(文獻公) 경대(經臺) 김상현(金尙鉉)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스승으로부터 덕 있는 자로 인정받았다. 동학 농민 운동(東學農民運動)이 일어나자 신하로서 도리를 지키자는 수의회(守義會)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나자 같은 고을 사람인 박중호(朴重浩), 하태홍(河泰洪) 등과 함께 대궐로 나아가 일본을 물리쳐야 한다는 소(疎)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오도산(吾道山)의 농막에 숨어서 신진(新進)들을 가르치며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