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6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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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俊民 |
영어공식명칭 | Gim Junm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유호석 |
[정의]
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이자 의병장.
[활동 사항]
김준민(金俊民)[?~1593]의 본관은 상산(商山)으로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에서 출생하였다.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으며, 1583년(선조 16)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이제신(李濟臣)과 함께 군관으로 출전하여 호족(胡族)을 정벌하는 데 공을 세웠다. 그 뒤 거제 현령(巨濟縣令)을 지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합천 가장(陜川假將)으로 의병을 모아 그해 7월 무계현(茂溪縣)에서 왜병들을 크게 격파하였다. 김준민은 당시 관군(官軍)을 의병처럼 꾸며 왜병들을 현혹하며 공격하였다. 이에 무주와 옥천(沃川)에 주둔했던 왜병들이 병영(兵營)을 불사르고 도망가 버려 호남 지역이 수복되었다. 9월에는 성주(星州)에서, 10월에는 제1차 진주성 전투(第-次晋州城戰鬪)에서 왜적을 무찔렀으며, 이듬해 6월의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참가하여 왜적 6만~7만 대군과 맞서 성의 동문을 굳게 수호하기 위하여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임진왜란이 끝난 뒤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봉되고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되었다.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발산리에 있는 창렬사(彰烈祠)에 배향되었다. 진주시 이반성면 발산리에는 김준민의 신도비(神道碑)와 비각이 세워져 있는데, 2001년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306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