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9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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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抱川亭子野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병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669년 - 「포천정자야」 저자 채팽윤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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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731년 - 「포천정자야」 저자 채팽윤 사망 |
성격 | 한시 |
작가 | 채팽윤 |
[정의]
조선 후기 채팽윤이 포천 들녘에 있는 정자를 소재로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개설]
「포천정자야(抱川亭子野)」는 조선 후기의 문신 희암(希菴) 채팽윤(蔡彭胤)[1669~1731]이 포천의 어느 들녘에 있는 정자에서 지은 한시이다.
채팽윤은 자가 중기(仲耆)이고, 호는 희암, 은와(恩窩)이다. 본관은 평강(平康)으로 오광운(吳光運)[1689~1745], 이덕수(李德壽)[1673~1744], 이현조(李玄祚)[1654~1710], 이현석(李玄錫)[1647~1703] 등과 교유했다. 1687년(숙종 13) 진사시에 합격하고, 1689년(숙종 15)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사가독서에 뽑히고, 홍문록(弘文錄)에도 들었으나 삭제되었다. 1716년(숙종 42) 홍주 목사가 되었으나 현 거주지라는 이유로 사양하고, 1725년(영조 1) 무주 부사, 이후 도승지, 대사간 등을 지냈다. 조카 채응일(蔡膺一)과 아들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1720~1799]이 문집을 간행하였다.
「포천정자야」는 채팽윤의 문집 『희암선생집(希菴先生集)』 권(卷) 10의 「쌍성록(雙城錄)」에 수록되어 있다. 『희암선생집』은 29권 14책으로, 권 1은 부(賦) 9수, 권 2~20은 시(詩)이다. 1,880여 제의 많은 시가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내용]
일곡청류포현장(一曲晴流抱縣長)[한 구비 맑은 물, 포천을 길게 흐르고]
란봉무진제청창(亂峯無盡際靑蒼)[여기저기 봉우리는 푸름 사이로 끝이 없네.]
귀홍진객환동도(歸鴻趁客還同道)[돌아오는 기러기는 나그네를 따라 같은 길로 돌아오고]
적설기춘사이방(積雪欺春似異方)[쌓인 눈은 봄이 아닌 듯 다른 곳처럼 느껴지네.]
삼로산천초발리(三路山川初跋履)[삼도(三道)의 산천을 처음 밟아 보지만]
이모남북태서황(二毛南北太棲遑)[늙도록 남북으로 정처 없이 떠돌았다네.]
홀봉수계동래자(忽逢隨計東來者)[과거를 보려고 동쪽에서 오는 사람을 만나]
빙기가서입한양(憑寄家書入漢陽)[한양으로 보낼 편지를 맡기네.]
[특징]
채팽윤은 먼저 동서로 길게 흐르는 포천천과 주변의 산봉우리를 그리고, 정처 없는 발길을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 한양으로 가는 사람을 만나 집의 편지를 맡기고 훌훌히 더 나가는 모습이 여유롭기만 하다. 채팽윤은 포천과 관련된 「포천장거리 봉사비구(抱川塲巨里逢四比丘)」[포천 장거리에서 비구 넷을 만나다]라는 시도 남기고 있다.
[의의와 평가]
채팽윤은 1723년(경종 3) 금강산을 유람하고, 「풍악록(楓岳錄)」을 남겼다. 「포천정자야」가 실려 있는 「쌍성록」은 1706년 조카 채응삼(蔡膺三)의 영흥부 친영(親迎)에 함께 하였을 때의 작품들을 모은 것으로, 저자의 30대 후반 소작이다. 채팽윤은 생전에 매우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특히 남인으로서 갑술환국(甲戌換局) 이후 20여 년을 거의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는 동안 많은 시문을 남겼다. 채팽윤이 편찬한 『소대풍요(昭代風謠)』는 여항인들의 시문을 모은 것으로 일찍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