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6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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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在永孝子碑-碑閣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공덕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정자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819년 - 이재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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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873년 - 이재영 효자비 및 비각 건립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884년 - 이재영 사망 |
현 소재지 | 이재영 효자비 및 비각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공덕리 |
성격 | 비 및 비각 |
양식 | 비각: 이익공|맞배지붕 |
관련 인물 | 이재영 |
재질 | 비각: 목재 |
크기(높이) | 145㎝ |
너비 | 37.5㎝ |
두께 | 16㎝ |
문물|보호단위 등급 | 비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공덕리에 이재영(李在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비 및 비각.
[개설]
이재영[1819~1884]은 본관이 경주이며, 지극한 효성으로 이 지역에서 이름이 난 인물이다. 아버지의 병환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드리니 다음날 쾌차했다고 전하며, 겨울에 얼음을 깨어 물고기를 잡아드리는 등 부모가 드시고 싶은 음식은 아무리 멀어도 구해드렸다고 한다.
또 집에 불이 나서 어버이의 수의를 잃을 지경이 되자 불 속으로 뛰어들어 수의를 꺼내기도 했다고 한다. 어버이 상에 3년을 시묘했고 제사 때 집안은 물론, 멀리 산소까지 정결히 하고 마을 어귀까지 나가 혼백을 받들었다. 이런 사실을 고을에서 천거해 1873년(고종 10) 조정에서 정려하고 통훈대부 사헌부 감찰 벼슬을 추증했다.
[건립 경위]
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받든 이재영의 효행을 고을에서 천거해 1873년 조정에서 정려하고 비각을 건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위치]
이재영 효자비 및 비각은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공덕리 음지마을에 있다. 공덕리는 영천에서 청송으로 이어지는 국도 35호선에서 화남면 소재지를 지나 오산교[고현천 위에 놓은 도로 교량]를 건너자마자 우측으로 난 제방길을 따라 가면 오산리가 나온다. 오산리에서 계곡길을 따라 계속 들어가면 마지막 동네인 공덕리 음지마을에 다다른다. 효자각은 마을 끝에 민가와 100m 정도 떨어진 도로 변 과수원 곁에 있다.
[형태]
효자각은 단칸 규모의 맞배지붕 목조 건물로 일반적인 비각 형태이다. 비각 주위는 방형의 토석 담장으로 두르고 일각문을 통해 비각에 들어간다. 비각은 원형 기둥을 세우고 주 상부에 창방을 건너질러 비각을 완성했는데 주 상부에 연화문을 초각한 앙서와 수서를 표현하고 그 위에 봉두를 초각한 이익공 양식이다.
벽은 홍살벽으로 처리하고 건물 전체 목부재에는 단청을 입히지 않은 백골집이다. 박공면에는 풍판을 달아 비바람에 대비했고 지붕은 겹처마에 한식 기와를 이엇다. 비각 내부의 후면 상부에 현판이 걸려 있다.
비각 내부 중앙에는 비명을 새긴 비가 있는데 그 크기는 높이 145㎝, 너비 37.5㎝, 두께 16㎝이다. 비각 내부 후면 상부에 ‘효자각(孝子閣)’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고, 비 몸에는 세로로 ‘증통훈대부사헌부감찰효자월성이공재영지비(贈通訓大夫司憲府監察孝子月城李公在永之碑)’라는 비명을 새겼다.
[현황]
효자각에서 골짜기를 따라 1.4㎞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탑골못 상부 선상지에 공덕사지와 삼층 석탑이 남아있다. 이재영의 묘소는 임고면 삼매리에 있다.
[의의와 평가]
이재영 효자비 및 비각은 영천 지역 비각 중에서 단청을 하지 않은 유일한 백골집 비각으로 조선 후기의 건축적 양식을 볼 수 있는 건축적인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