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7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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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鶴眠亭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화룡동 224-1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태훈 |
건립 시기/일시 | 1605년경 - 학면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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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46년 - 학면정 중건 |
이전 시기/일시 | 1973년 - 학면정 이건 |
현 소재지 | 학면정 - 경상북도 영천시 화룡동 224-10 |
원소재지 | 학면정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
성격 | 누정 |
양식 | 겹처마|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5칸 |
문물|보호단위 등급 | 비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룡동에 조선 후기의 학자인 이수눌·이수겸·이수인 삼형제를 기리기 위해 아들 이희백이 건립한 정자.
[개설]
이수겸(李守謙)[1526~1611]의 본관은 벽진, 자는 양중(讓中), 호는 장계(獐溪)이다. 생육신 이맹전(李孟專)의 4세손으로 조호익(曺好益)과 교우했으며, 대구교수사부학당교수(大丘敎授四部學堂敎授)를 거쳐 통정대부(通政大夫) 교서관판교(校書館判校)를 제수 받았다. 형인 이수눌(李守訥), 아우 이수인(李守認)과 함께 자양면 성곡리 산중에서 강학에 힘썼다.
아들 이희백(李喜白)[1548~1608]의 자는 백진(白眞), 호는 대암(臺嵒)이며, 조호익 문하에서 수학했고, 임진왜란 후에 임고 서원 및 교궁을 건립해 사림의 추증을 받았다. 아버지 이수겸과 백부 이수눌, 계부 이수인을 위해 정자를 지어 편안케 했다. 장현광(張顯光)이 ‘학면(鶴眠)’이라 정자 이름을 정해주고 기문도 지었다.
[변천]
학면정은 이희백이 아버지 삼형제를 위해 자양면 성곡리에 1605년 무렵 초가집으로 건립했으나 세월이 흘러 무너진 것을 1946년 중건했다. 1973년 영천댐 건설로 성곡리가 수몰됨에 따라 현 위치인 화룡동에 이건했다.
[형태]
학면정은 성곡리에 건립 당시 운주산의 줄기를 뒤로 하고 앞의 기룡산을 마주했다고 한다.
방형의 시멘트 블록 담장 정면 우측에 난 일각문을 들어서면 ‘一’자형의 정자가 동향으로 독립 배치되어 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다음 전면에 반 칸의 퇴를 둔 전형적인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이다.
대청 뒤와 건물의 측면에는 쪽마루를 설치해 동선의 편의를 도모했고, 전면의 퇴 가장자리에는 계자각 난간을 두른 헌함을 두어 운치를 더했다. 창호는 청방 간에 쌍여닫이문을 달아 방으로 출입케 했고, 대청 배면에는 쌍여닫이 판문을 두었다. 방의 전면에는 머름 위에 쌍여닫이 세살창을 달았고, 측면에는 외여닫이 창호를 달았다. 한편 퇴칸의 양 측면에는 쌍여닫이 판문을 달아 개방과 정면 안을 강조했다. 구조는 건물 전체에 원주를 세워 가구를 완성했고, 건물 추녀 모서리에 활주를 세워 안정감을 취했다. 지붕은 겹처마의 팔작지붕에 한식기와를 이엇다.
[현황]
학면정은 정자 마당에 조경을 했고 정면 어칸 상부에 ‘학면정(鶴眠亭)’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건물 내부에 여헌 장현광이 쓴 기문이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학면정은 중건과 이건이 되면서 건립 당시의 모습은 찾을 수 없어 건축적 가치는 약하다. 하지만 기문 등을 통해 건립 배경과 배치 그리고 건축물의 구조 등을 짐작 할 수 있어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