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7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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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舊永川飛行場格納庫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신월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정자 |
건립 시기/일시 | 1945년 - 구 영천비행장 격납고 건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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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구 영천비행장 격납고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신월숲길 18|신월리 86-3 |
성격 | 격납고 |
양식 | 철근콘크리트조 굴형 |
문화재 지정 번호 | 비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신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영천 지역에 전투용 비행기를 보관하려고 건립한 창고.
[개설]
격납고는 비행기를 보관하거나 정비할 목적으로 건립한 창고로 영천의 격납고는 규모가 작은 것으로 볼 때 소형 전투기 격납고이다. 금호읍 신월리와 봉정리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해발 226.8m 봉우리 서·남쪽 일대 및 해발 191.1m 봉우리 남쪽 일대에 대단위 비행장이 건설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완공을 앞두고 해방이 되면서 현재는 몇 기의 흔적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위치]
구 영천비행장 격납고는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신월숲길 18에 있다. 대구에서 영천~경주로 이어지는 국도 4호선을 타고 영천시 금호읍을 지나면 고가도로 아래의 굴다리로 통하는 영천 시내 방면 도로가 있다. 이 굴다리를 통과해 영천경찰서 쪽으로 가면 육교가 나타난다. 이 육교에서 좌회전하면 경상북도 문화재연구원[윤성아파트 옆]이 있고 직진하자마자 우측으로 보면 밭 가운데 격납고가 보인다.
[변천]
구 영천비행장 격납고는 일제가 전투 비행장 건설을 위해 전국을 대상으로 물색하던 중 강우량이 적고 기후가 안정적인 영천 지역에 1945년 건설했다. 하지만 완공을 앞두고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면서 건설은 중단되었다. 그 후 방치된 것을 이 지역 주민들이 현재 다용도 창고로 이용하고 있다.
2004년 문화재청에서 전국적으로 실시한 근대문화유산 일제 조사 사업의 일환으로 경상북도 지역 근대문화유산 조사를 경상북도 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하게 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조사가 끝나고 몇 년 뒤 격납고의 가치가 인정되어 등록문화재로 신청을 앞두고 토지 소유자가 현상 변경 등의 이유로 잔존 격납고 중 일부를 강제 철거해 현재 온전하게 남은 것은 1기 정도이다.
[형태]
구 영천비행장 격납고는 겉에서 보면 마치 조개가 반 정도 바닥에 묻혀 있는 굴처럼 보인다. 정면에서 보면 반타원형으로 생겼는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좁아지면서 그 끝은 모아져 있다. 구조는 철근 콘크리트조로 콘크리트 외에 다른 재료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완공을 앞두고 중단되었기 때문으로 아직도 콘크리트 양생에 쓰였던 판재 등의 목부재가 붙어 있다. 입구의 너비는 15m, 길이는 14.3m, 입구 쪽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는 3.3m이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폭과 높이가 줄어든다.
[현황]
구 영천비행장 격납고는 현재 신월숲길 18에 3기가 있는데 이 중 2기는 훼손되어 그 흔적만 남아 있고 1기만 온전하게 남아 있다. 이곳은 과수원과 밭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격납고는 과수원의 경작 도구를 보관하는 창고로 이용되고 있다. 한편 이곳에서 남동쪽 1.5㎞의 봉정리 새터마을 솔밭에 1기와 해현지 북서쪽 제방 내 1기가 반파된 채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 일제가 남한에 건립한 비행장 격납고는 여러 곳 있으나 제주도를 제외하면 본토에는 영천에만 잔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천의 격납고는 규모가 작은 것으로 볼 때 소형 전투기를 보관할 목적으로 건립한 것으로 판단된다. 격납고의 입구는 유적의 가치보다는 일제 치하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다는 의미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된다. 관계 당국과 긴밀한 협조 하에 보존 방안을 세워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