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3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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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良場戰鬪- |
영어음역 | Gimnyangjang Jeontu(2) |
영어의미역 | Gimnyangjang Battle(2)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희진 |
성격 | 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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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연도/일시 | 1951년 |
발생(시작)장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
관련인물/단체 | 터키군|중공군 |
[정의]
1951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서 터키군이 중공군을 축출한 전투.
[개설]
1951년 1월 25일을 기하여 미 제8군사령관 릿지웨이 장군은 UN군이 중공군에 대하여 본격적인 반격 작전을 펼치도록 하고, 한강을 향해 북진하라고 명령했다. 이 작전이 이른바 선더볼트 작전이다.
1951년 1월의 김량장 전투는 이 작전의 일환으로 터키여단이 중공군 제50군 예하 제49사단 제447연대 및 제150사단 제448연대와 치른 전투이다. 이 작전에 참여했던 터키군이 중공군을 방어 거점인 김량장리에서 몰아냈다.
[역사적 배경]
1951년 1월 12일을 전후하여 중공군의 3차 공세로 야기된 위기가 수습됨에 따라 국군과 UN군은 평택과 삼척을 연결하는 선에서 안정을 되찾고, 부대를 수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UN군을 추격할 줄 알았던 중공군과 북한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중공군의 위치 확인과 함께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 1951년 1월 15일부터 개시된 1개 연대 규모의 위력 수색을 실시했다. 이를 통하여 보급과 화력 면에서 취약점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한 UN군측은 미 제8군사령관 릿지웨이 장군의 지휘 하에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1950년 10월부터 이미 한국에 투입되어 있던 터키군 제1여단은 이 전투에 참여하여 1951년 1월 25일 새벽 6시에 151고지와 김량장리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발단]
터키 여단은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를 평택과 제천 선에서 저지하고 재반격 작전을 실시할 때, 1월 25일부터 김량장리 및 151고지를 목표로 공격을 실시하였다. 당시 중공군도 그곳에서 강력한 방어 진지를 구축하여 결전을 시도하고 있었으므로 그곳에서 격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경과]
터키여단은 각종 지원 화력과 근접 항공 지원을 요청하여 중공군의 진지를 맹타한 다음 공격을 개시하였다. 먼저 김량장리의 서측 151고지를 점령하고 미 전차의 화력을 지원받아 1월 26일 김량장리도 확보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전투에서 터키여단은 약간의 손실을 입은 반면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이 전투는 군우리 전투에서 패배한 터키군의 명예를 회복시켜 준 전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