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백암은 넓은 들판과 넘실대는 하천을 가진 용인 동부 지역의 곡창지대였다. 풍요로운 농촌으로 인근 지역의 부러움을 살 만큼 부촌(富村)이었다. “신갈 처녀 백암에 시집가면 부모 얼굴 퍼진다.”라는 말이 전하기도 한다. 척박한 땅의 신갈과 기름지고 넓은 들판을 가진 백암을 비교해서 전하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는 신갈 처녀가 백암으로 시집간 사례가 많지 않다. 다른 지역이 10...
백암은 농업 외에 축산업으로도 유명한 지역이다. 백암 지역은 수정산, 건지산, 대덕산, 조비산 등이 완만하게 경사를 이루며 넓은 들판에 초지(草地)를 형성하고 있어 목축업에 최적지이다. 축산 경기가 활발하던 시기에는 마을마다 여러 가구에서 소와 돼지를 대량 사육하였다. 전국 규모의 쇠전(우시장)이 열릴 정도로 컸던 백암장의 배경에는 축산업이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농업 지역에서 그랬듯이 백암에서도 논농사는 공동노동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농악’이란 말로 기억되고 있는 두레는 마을 일꾼들의 공동노동을 위한 조직이었다. 용인의 곡창지대로 불리는 백암면의 두레 활동은 타 지역에 비해 왕성했다. 이들 두레는 여름 논매기 시절뿐 아니라 모내기, 보리파종, 곡물 수확 때까지도 협업과 놀이를 하며 일의 능률과 서로간의 화합을 돈독히 다졌다.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