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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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던 시기 구미 지역의 역사. 구미시의 ‘구미’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선산도호부 상구미면·하구미면에서 비롯되어 1914년 상구미면·하구미면이 개칭된 상고면·하고면이 구미면으로 통합·개칭된 데서 비롯되었다. 독립된 지방행정구역으로서의 구미시는 1978년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통합되어 구미시로 승격되면서 성립되었고, 1995년에 선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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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상북도 구미시가 관할하는 지역은 과거의 선산·해평·인동 지역이다. 따라서 구미시 지역을 관향으로 둔 성씨는 선산(일명 일선)·해평·인동으로 나뉜다. 선산 지역을 관향으로 둔 성씨 중에는 김종직을 배출한 일선김씨가 유명하고, 해평 지역을 관향으로 둔 성씨 중에는 길재를 배출한 해평길씨가 유명하고, 인동 지역을 관향으로 둔 성씨는 장현광을 배출한 인동장씨가 유명하다. 특히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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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 구평동은 6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불바우(불바위)는 약 300년 전에 이루어진 마을로 봉두암산 산마루에 있던 바위가 벼락을 맞아 두 동강이 나면서부터 붙여진 이름이다. 구진벌(구준벌)은 거북의 등처럼 딱딱하고 쓸모없이 자갈이 많은 거친 땅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무지개마을은 마을 생김새가 무지개처럼 생겼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는 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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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순충공(順忠公) 김선궁(金宣弓)의 13세손이며, 아버지는 간의공(諫議公) 김우류이다. 김달상은 18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23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공민왕 때 좌대언, 한성부윤, 응양상호군 양광도도순무사, 판밀직부사 등을 지내면서 공민왕의 개혁 정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화의군(和義君)에 봉해졌으며, 일선김씨의 화의군파의 파조(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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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순충공(順忠公) 김선궁(金宣弓)의 12세손이며, 일선김씨 우윤공파의 파조이다. 김득자는 학문과 덕행이 뛰어났으며, 급제하여 관직이 삼사우윤에 이르렀다. 장차 고려가 망할 것을 알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후진 양성에만 전념하였으며, 일선김씨 우윤공파(右尹公派)의 파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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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아버지는 일선김씨 시조 순충공 김선궁이며, 동생은 삼사우윤을 지낸 김봉문이다. 김봉술의 벼슬은 시중에 이르렀다. 시호는 장절(壯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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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습례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곳과 뒷산 가장자리에 대나무 밭이 여기저기 많아서 대밭골이라 불리워졌다고 한다. 또한 죽전(竹田)이라고도 한다. 마을은 월유봉(月留峰)의 남동쪽 산자락에 그리고 습례들의 위쪽 부근에 있다. 뒤는 300m 정도의 산지가 겨울의 차가운 북서계절풍을 막아주고, 앞은 넓은 들과 감천이 굽이쳐 흐르고 있다. 마을의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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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호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해평현이 있을 때 관가의 큰 창고 60채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창고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옛날에는 태인경씨, 영양오씨 등 몇 가구가 살고 있었으며 임진왜란 이후에 번창한 마을이라 한다. 해평면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형도에는 대창걸로 표시되어 있다. 도문동에서 시작하여 낙동강에 직접 연결된 도문천(너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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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임천리에 있는 저수지. 조선 초기에는 구미시 산동면 지역에 성산배씨가 주로 거주하였는데, 성종 때에 일선김씨가 고아읍 오로리(吾老里)에서 산동면 임천리로 이주하였다. 임진왜란 후인 1615년(광해군 7) 병조참지를 지낸 김녕(金寧)이 광해군의 폭정으로 벼슬을 버리고 산동면 임천리 고향에 돌아와 후학을 가르치니 김녕을 따르는 이 즉 몽도(夢徒)가 많아서 산동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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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 거주한 토착 성씨. 구미 지역에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등에 나오는 토성(土姓)·내성(來姓)·사성(賜姓)·속성(續姓)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성씨와 후대 어느 시점에서 수학(修學)·혼인 등으로 이주해온 성씨들이 있다. 어느 정도 족세를 유지하면서 세거해온 성씨로는 선산김씨·일선김씨·안강노씨·벽진이씨·인동장씨·해평길씨·해평윤씨·전주최씨·밀양박씨·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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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교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조선 중기 선산김씨(善山金氏, 일선김씨(一善金氏)라고도 함) 내외가 이주를 하려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이곳 용동골까지 왔는데, 갑자기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비 속에 한 쌍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이곳에 정착한 뒤 마을 이름을 용동골이라 하였다. 용동곡(龍動谷)이라고도 한다. 북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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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전해 오고 있다. 자연마을로 교동(校洞), 중리(中里), 남산(南山), 마차골[馬車谷] 등이 있다. 교동은 옛 향교가 있었다는 연유에서, 중리는 인동장씨 중리파의 유허지(遺墟地)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산은 인동장씨 남산파가 세거한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고, 마차골은 임진왜란 당시 마차가 집결한 곳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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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6년 고려와 후백제가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일리천을 사이에 두고 싸운 전투. 신라 하대에 들어오면서 골품제가 붕괴되고 중앙귀족이 왕위쟁탈전을 벌이자 주군현이 공부(貢賦)를 거두어들일 수 없게 되었다. 나라 창고는 고갈되고 왕은 조세의 납부를 독촉하는 사신을 파견하였다. 이에 곳곳에서 도적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도적이 상주의 원종·애노, 북원의 양길·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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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궁을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구미시 세거 성씨. 일선(一善)은 선산의 옛 이름으로, 신라 눌지왕 때 일선군이라 칭하였고, 614년(진평왕 36) 주(州)로 승격되었지만 687년(신문왕 7)에 폐지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숭선군(崇善郡)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995년(성종 14)에 다시 선주(善州)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상주의 속주가 되었다. 11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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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궁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고려 말 충신 농암 김주의 충열당, 의관묘, 신도비가 있고, 김주의 후손 중에 많은 인재가 배출된다고 하여 재궁(才宮)이라 하였다. 뒤에는 재궁, 원당골, 농바우 뒷산이 연결되어 있고 앞에는 낙동강이 흘러 넓은 들을 끼고 있는 살기좋은 농촌마을이다. 궁기리는 도개면 소재지 마을인 궁기1리와 재궁, 원당골, 농바우로 구성된 궁기2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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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호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옛날부터 재궁[재실]이 있는 곳이라 해서 재궁골 또는 쟁골로 통하고 있다. 마을에 후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운 삼중대광문하시중선주백순충공(三重大匡門下侍中善州伯順忠公) 김선궁(金宣弓)의 묘소 및 재사신도비각(齋舍神道碑閣) 및 생육신(生六臣) 경은(耕隱) 이맹전(李孟專)의 묘소와 재사(齋舍)가 있어 재궁이라 이름 붙였다. 마을 형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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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던 시기 구미 지역의 역사. 구미시의 ‘구미’ 명칭은 조선시대 선산도호부 상구미면(上龜尾面)·하구미면(下龜尾面)에서 비롯되어 1914년 상하구면·하구미면이 개칭된 상고면·하고면이 구미면으로 통합, 개칭된 데 기인한다. 독립된 행정구역으로서의 구미시는 1978년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통합되어 시로 승격하면서 성립하였고,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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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모여 사는 촌락.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강조하면서 숭유억불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였다. 그러나 고려왕조의 불교적 색채는 조선 전기까지 끈질기게 남아 있었으며, 조선왕조가 추진하는 성리학적 지배이데올로기는 중종 연간을 지나면서 서서히 지방 양반과 일반 백성에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남귀여가(男歸女家)의 혼인, 재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