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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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낙동강 물이 흘러들어 왔다가 돌아 내려가는 곳을 돌머리라 하고 배를 메어 두던 곳을 용바위라 하는데, 그 후 이곳이 토사로 퇴적되면서 들이 되었다. 거물리는 바로 그 들에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 년 전 들어선 작은 마을로서, 왜 거물리로 불렸는지는 알 수 없다. 거물리는 낙동강 오른쪽에 만들어진 범람원의 구석 부분에 위치한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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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본래 아홉 개의 작은 마을로 이루어졌다 하여 구남(九南)으로 불렸는데, 이후 고남(古南)에서 고내미로 변했다고 한다. 고내미는 낙동강 오른쪽에 만들어진 범람원의 위쪽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다. 1960년대 낙동강에 제방이 쌓아지면서 앞들은 홍수 피해가 감소하였고, 범람원 지역은 농경지로 변모하였다. 마을 앞들을 지나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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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수령 400년의 반송. 반송은 상록 침엽 교목으로 소나무의 한 품종이다. 줄기 밑 부분에서 거의 같은 크기의 가지가 많이 나와 나무 전체가 반원형을 띠며, 소나무에 비하여 훨씬 작다. 솔방울 길이가 2~3㎝이다. 건조한 기후에 강하며 지형이 낮은 곳보다 높은 곳에 심는 것이 좋고, 겨울철 눈이 녹아 물이 고이는 곳에는 심지 않도록 한다. 정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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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 김경진의 선정비. 김경진(金敬鎭)은 음사로 관직에 진출하여 1853년(철종 4)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855년(철종 6) 상주목사로 이배되어 떠났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의 선정을 기려 비가 세워졌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 안으로 150m 정도 올라가면 십이지신상 앞에 세워져 있다. 윗부분이 평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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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 김명진의 선정비. 김명진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부사김후명진청덕선정비(府使金侯明鎭淸德善政碑)’는 김명진(金明鎭)은 나주목사로 재임하다가 조카인 김계온(金啓溫)이 전라감사로 부임함에 따라 1814년(순조 14)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816년(순조 16) 이임한 인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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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개항기 인물 김명진에 대한 선정비. ‘순찰사김상국명진청덕선정비(巡察使金相國明鎭淸德善政碑)’는 1888년(고종 25)에 경상도관찰사로서 군비 태세를 살피는 순찰사를 겸직하여 도내를 순력하였으며, 이 해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생활이 곤궁해지자 이를 진휼(賑恤)하고 조세를 감면해 주도록 하였다. 경상도관찰사로서 치적을 쌓은 것을 기려 백성들이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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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김세균의 선정비. 김세균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1860년(철종 11)에 경상도관찰사로서 군비 태세를 살피는 순찰사를 겸직하여 도내를 순력하였으며, 백성들에 피해를 주고 있는 많은 폐단을 시정하여 주었다. 경상도관찰사로서 치적을 쌓은 것을 기려 백성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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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 선산부사를 역임한 김위의 선정비. 김위(金偉)는 남원 출신으로서, 성혼의 문인으로 이이(李珥)와 교유하였으며, 1558년(명종 1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이후 내외의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선산부사도 역임하였다. 벼슬이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 형조참의(刑曹參議)에 이르렀으며, 그가 이임한 뒤 백성들이 선정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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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말 김호겸의 선정비. 김호겸(金好謙)은 1888년(고종 25)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890년(고종 27)에 황주목사(黃州牧使)로 이임하였다. 선산부사로 재임하고 있던 1889년(고종 26) 춘분에 공곡(公穀)으로 굶주린 백성을 진휼(賑恤)하는 공진(公賑)을 행하여 헐벗고 굶주린 백성을 구휼하였으며, 고종으로부터 이 공으로 숙마(熟馬)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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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 노경건의 처 송씨의 정려비. 송씨는 사인(士人) 노경건의 처로 임진왜란을 당하여 1593년(선조 26) 5월 상주(尙州)의 산중으로 부부가 함께 피난하던 도중 적을 만났는데 적이 남편을 해치려 하자 송씨(宋氏)는 전력을 다하여 대항하였다. 적이 남편을 살해하고 다시 송씨를 겁탈하려고 하자 송씨는 자신의 목을 베더라도 그들의 뜻을 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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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수리계장 노주한의 선정비. 수리계장은 수리계의 대표로서, 주로 저수지 관리를 하던 사람으로서 노주한은 선산군수로 부임한 이학귀가 시행한 독동들의 관개 및 수리 시설의 확충 과정에 수리계의 대표로서 많은 공을 세웠는데, 이를 기려 1939년에 비석을 세웠다. 비석은 높이 108㎝, 너비 37.5㎝, 두께 10.5㎝의 비신에 높이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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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안강(安康). 자는 양호(養皓), 호는 백송대인(白松大人). 아버지는 노계조(盧啓祚)이다. 노호(盧澔, 1765~1833)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의 안강노씨 세거지에 세워진 문산서원(文山書院)이 서원으로 승격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평생 동안 학문에 전념하여 많은 유림으로부터 존경받았으며, 학문과 행실이 뛰어나 존노(尊老)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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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의 돌출된 암벽에 새겨진 글자. 독동리 문산동문 암각은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암벽에 있다. 독동리 문산동문 암각은 가로 세로 약 20m 크기의 돌출된 암벽에 ‘문산동문’이라는 글자가 자경 약 20㎝ 크기의 해서체로 각자 되어 있다. ‘문산계(文山界)’의 ‘계(界)’자가 메워져 후대에 동문(洞門)으로 새로 새긴 흔적이 보이며, 서체는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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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낙동강변 암벽의 돌출된 부위에 새겨진 글자. 독동리 북암 암각은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강창마을 낙동강변 바위에 있다. 독동리 북암(北岩) 암각은 약 20m 높이의 암벽에 돌출된 부위의 가로 약 5m, 세로 약 4m의 벽면에 자경이 약 20㎝인 해서체로 각자(刻字)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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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수령 280년의 팽나무. 팽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 교목으로, 우리나라의 정자나무 가운데 느티나무 다음으로 많이 심어져 있는 수종이다. 높이는 20m에 달하고 평지에서 양지와 음지를 가리지 않으나 평탄하고 깊은 땅을 좋아한다. 성장이 빠른 편이며, 뿌리가 잘 발달하여 강풍과 해풍에도 강하고 내염성이 있어 동해안 일대에서 좋은 생육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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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노헌영 가에 있는 조선 전기 서거정이 엮은 시화집. 『동인시화』는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편찬하고 1477년(성종 8) 밀양에서 간행한 초간본이다. 2011년 4월 29일 보물 제1712호로 지정되었다. 책 앞에 강희맹(姜希孟)과 김수온(金守溫)이 1474년(성종 5)과 1475년(성종 6)에 각각 쓴 서문이 있고, 본문 상·하권이 끝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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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서원. 선산읍 독동리 동부인 낙동강 강변에 자리 잡고 있다. 1792년(정조 16) 창건되었으며, 1868년(고종 5) 서원 훼철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1986년 현 위치에 중건되었다. 외삼문인 상지문(尙志門)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문산서원’ 현판을 단 4칸의 이학당(理學堂)이 보인다. 그 양옆으로 각각 역락재(亦樂齋)와 시습재(時習齋)가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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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 민치서의 선정비. 민치서(閔致序)는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862년(철종 13) 장흥부사(長興府使)에서 선산부사로 부임하였으며, 1864년(고종 1) 공주판관이 되어 이임한 인물로서 선산부사로서 베풀었던 선정을 기려 백성들이 비석을 세웠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 안으로 150m 정도 올라가면 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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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인 서경순의 선정비. 서경순(徐經淳)은 1858년(철종 9)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860년(철종 11)에 이임한 인물로서, 선산부사를 역임하면서 베푼 선정을 기려 백성들이 비석을 세웠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 안으로 150m 정도 올라가면 십이지신상 앞에 세워져 있다. 높이 123㎝, 너비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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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소재한 고전적자료전시관의 노진환(盧鎭桓)이 소장한 고전적. 선산 노진환 전적은 17세기 이후 조성된 전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문집류로는 영남·기호 지역의 학자들의 문집을 합하여 3,000여 종 총 20,000여 책에 달한다. 그 외 잡저류로는 250여 종 1,600여 책이 있다. 고문서로는 13,000여 점이 있는데 이에는 교지, 호구단자, 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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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심경택의 선정비. 심경택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간 뒤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대사헌으로서 오랜 기간 활약하였다. 1858년(철종 9)에 경상도관찰사로서 군비 태세를 살피는 순찰사를 겸직하여 도내를 순력하였는데, 이때 선산부 백성들의 민폐를 시정하는 데 노력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부임한 다음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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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말의 인물 엄세영 불망비. 엄세영은 동학 농민 전쟁 때, 수령들의 정사를 살피고 백성들의 고통을 돌보는 임무를 맡은 삼남염찰사, 선무사(宣撫使)로 임명되어 민심을 수습하고 안집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이 시기에 민폐를 많이 시정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엄세영의 선정에 보답하기 위하여 비가 세워졌다. 비석은 덮개돌과 비좌 없이 윗부분이 평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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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말기 인물 오일영의 선정비. 오일영(吳鎰泳)은 1887년(고종 24) 5월에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그 해 12월에 관아에서 죽었던 인물로서, 백성들이 그를 기려서 일명 ‘타루비(墮淚碑)’라 하는 선정비를 세웠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 안으로 150m 정도 올라가면 십이지신상 앞에 세워져 있다. 높이 144㎝, 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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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를 역임한 윤봉소의 선정비. 윤봉소(尹鳳韶)는 1726년(영조 2) 12월에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727년(영조 3) 8월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인물로서, 선산부사로서 베푼 선정을 기려 백성들이 비석을 세웠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 안으로 150m 정도 올라가면 십이지신상 앞에 세워져 있다. 윗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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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말의 군수 이소영 선정비. 이소영은 문과 출신으로 1896년(고종 33) 선산군수로 부임하여 1899년(고종 36) 예천군수로 이배되어 떠났다. 거사비(去思碑)는 수령이 갈릴 때 전임자의 선정(善政)을 기리어 고을의 백성들이 세우는 비이지만 이소영의 재임 기간 동안 선정에 대한 별다른 기록은 없으며, 객사 남쪽에 있던 찰미루(察眉樓)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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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선산군수를 지낸 이한귀의 선정비. 군수는 도(道)의 관할에 속하는 하급 지방자치단체인 군(郡)을 대표하고, 그 행정을 책임지는 장(長)으로서, 이한귀는 선산군수로 부임하여 지금의 선산읍 독동들의 관개, 수리 시설을 확충하여 당시 주민들이 농사를 짓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이를 기려 1939년 비석이 세워졌다. 비석은 높이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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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 이형회의 선정비. 이형회(李亨會)는 음사로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824년(순조 24)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827년(순조 27)까지 3년여 동안 재임하다가 죽었다. 재임 기간에 그는 빙허각(憑虛閣)을 건립하였고, 화재로 인하여 소실된 선산향교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청아루(菁莪樓)를 다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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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말기 선산부사 이호숙의 선정비. 이호숙(李鎬肅)은 음사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거친 후 문경현감(聞慶縣監)으로 있다가 1874년(고종 11)에 선산부사로 부임하였으며, 암행어사가 민정을 살핀 후 상을 줄 것을 청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1876년(고종 13)에 선산부사에서 이임하였는데, 청주목사(淸州牧使)로 승진하였던 것으로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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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를 역임한 전익희의 선정비. 전익희는 본관이 옥천(沃川), 호가 망일당(望日堂)이다.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서 인조 때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지평, 정언 등 청요직(淸要職)을 역임하는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서예에도 뛰어난 인물이었다. 전익희는 선산부사로서 역역(力役)과 부세(賦稅)를 경감토록 하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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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 정시선의 선정비. 정시선(鄭是先)은 1692년(숙종 18)에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693년(숙종 19)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인물로서, 선산부사로 베푼 선정을 기려 백성들이 비석을 세웠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 안으로 150m 정도 올라가면 십이지신상 앞에 세워져 있다. 높이 117㎝, 너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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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말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조강하(趙康夏, 1841~1892)의 선정비. 조강하는 외척인 풍양조씨 문중의 인물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예조판서, 독판내무부사(督辦內務府事)에 이르렀다. 1883년(고종 20)에 경상도관찰사로서 군비 태세를 살피는 순찰사를 겸직하였다. 경상도의 진휼을 위하여 내탕전(內帑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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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 조박의 선정비. 조박(趙璞, 1577~1650)은 문과 갑과 3등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으나 광해군 때의 대북파에 의해 여러 차례 탄핵을 받는 등 관직 생활이 순탄하지 못하였다. 배천현감, 무장현감, 평안도도사 등을 지낸 후 1623년(인조 1)에 선산부사에 부임하였으며, 부임한 지 2개월여 만에 파직되었다. 2개월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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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말 선산부사 조준구의 선정비. 조준구(趙駿九)는 1883년(고종 20)에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885년(고종 22)에 이임하였다가 1890년(고종 27)에 다시 선산부사로 부임, 같은 해 9월에 이임한 인물로서 선산부사로 베푼 선정을 기려 백성들이 비석을 세웠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 안으로 150m 정도 올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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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 홍술조의 선정비. 홍술조(洪述祖)는 병자호란 때 청군에 항거한 삼학사(三學士)의 한 사람인 홍익한(洪翼漢)의 손자로서 음사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금천현감(衿川縣監)으로서 흉년에 봉록을 내어 진휼함으로써 선산부사에 승차하였다. 뒤에 순천부사로 있으면서도 진휼(賑恤)과 치적이 높이 평가받기도 하는 등 지방관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