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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한 송덕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0848
한자 盧柱澣頌德碑
영어의미역 No Juhan's Monumental Stone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재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금석각류|선정비
양식 일반형 비석
건립시기/일시 1939년연표보기
관련인물 노주한(盧柱澣)
높이 142㎝
너비 37.5㎝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수리계장 노주한의 선정비.

[건립경위]

수리계장은 수리계의 대표로서, 주로 저수지 관리를 하던 사람으로서 노주한은 선산군수로 부임한 이학귀가 시행한 독동들의 관개 및 수리 시설의 확충 과정에 수리계의 대표로서 많은 공을 세웠는데, 이를 기려 1939년에 비석을 세웠다.

[형태]

비석은 높이 108㎝, 너비 37.5㎝, 두께 10.5㎝의 비신에 높이 34㎝, 너비 66㎝, 두께 44.5㎝의 팔작지붕 모양의 덮개돌을 올린 형태이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는 ‘수리계장노주한송덕비(水利稧長盧柱澣頌德碑)’라 새겨져 있고, 좌우로 그의 공을 기리는 비문에 각자되어 있으며, ‘소화십사년일월일립(昭和十四年一月日立)’이라 각자되어 있어 노주한 송덕비가 1939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비석은 도로변에 야트막한 산을 등지고 이학귀 송덕비와 나란히 건립되어 있으며, 건립 연도가 오래되지 않아 비문은 선명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수리계는 농업을 주산업으로 하고 있던 전근대 사회에서 수리 사업을 위하여 조직하였던 계(稧)로서, 모임의 대표인 수리계장은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노주한 송덕비는 전근대 사회에서의 물 관리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을 확인할 수 있는 증표로 삼을 수 있는 유적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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