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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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서 지주중류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길재(吉再, 1353~1419)는 고려 말기의 학자로 호는 야은·금오산인이다. 고려 삼은 가운데 한 사람이며, 저서에 『야은집(冶隱集)』과 언행록으로 『야은언행습유록(冶隱言行拾遺錄)』가 있다. 길재의 충절을 기려 세운 지주중류비는 1983년 6월 20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7호로 지정되었다. 길재의 충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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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남부지방산림청 산하 국유림 관리소. 숲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가꾸어 국민들에게 쾌적한 녹지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1년 6월 12일 안동영림서 구미관리소로 설치되었다. 1996년 1월 1일 남부지방산림관리청 구미국유림관리소로 개칭하였으며, 2006년 1월 1일 남부지방산림청 구미국유림관리소로 다시 이름이 변경되었다. 산림 보호를 위해 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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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경서노회 소속 교회. 1980년 7월 20일 구미영광교회로부터 분리하여 구미시 원평3동 144-2번지에서 구일교회로 창립하였으며, 초대 담임목사로 황계현 목사가 부임하였다. 1981년 1월 20일에 교회를 원평3동 160-1번지로 이전하였으며, 1983년 11월 30일 원평동 953-1번지 대지 696.3㎡를 건축부지로 매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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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구미오산초등학교는 생각이 바르고 이웃을 배려하는 어린이, 창의적이고 지혜로운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꿈을 가꾸는 어린이의 4개의 교육목표를 기반으로 바르고 슬기로우며 건강한 어린이라는 교훈을 설정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정직하고 창의적인 인간 육성이라는 교육의 구현을 위해서 힘쓰고 있다. 구미오산초등학교는 2006년 3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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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조선시대 길재의 묘. 여말선초 문인인 길재의 묘로, 구미시 오태동에 있다. 구미시 오태동 오태마을 왼쪽편 동북으로 뻗은 능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문인 묘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길재 묘의 왼쪽에는 묘비, 오른쪽에는 석등이 있다. 묘의 앞부분에는 좌우로 문인상이 2기 있다. 길재의 묘소 주변에는 묘비가 2기 있다. 길재 묘 앞쪽 낙동강을 내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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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조선시대에 세운 야은 길재 선생 추정 묘비. 길재의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冶隱), 또는 금오산인(金烏山人)이며,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말년에는 선산의 향리에서 강학을 베풀어 그 학통을 김숙자(金叔滋)에게 전하고 이를 다시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등이 이었다. 길재 묘비는 충의를 기리고, 학문적 성과를 기리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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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한국전력공사 구미지점 소속 변전소. 한국전력공사 구미지점에는 5개의 변전소가 있다. 가장 규모가 크고 먼저 건설된 구미변전소는 공단동에 있으며, 구미1공단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인동변전소는 황상동에 있으며, 구미2공단에 전력을 공급한다. 남인동변전소는 시미동에 있으며, 구미시와 칠곡군 일부에 전력을 공급한다. 고아변전소는 고아읍 송림리에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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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계측기 판매 회사. 뉴텍코리아는 2000년 5월 창립되어 2001년 5월 (주)LG전자 협력업체로 등록하였고, 2003년 3월에는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으로 사옥을 신축 이전하였으며, 2005년 11월에 엘지필립스엘시디 투자 유치에 성공하였다. 뉴텍코리아는 전기·전자·기계·통신에 관련한 계측기 판매와 매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로, 계측기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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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바른 품성을 심어 주는 인성 교육을 충실히 하고, 개성을 존중하는 기초·기본 교육을 강화하며, 창의력을 지닌 글로벌 인재로 육성하여 미래를 위한 지식·정보화 사회의 적응력을 신장시킬 것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정직하며 꿈을 지닌 건강한 사람이다. 2004년 10월 2일 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다. 2006년 9월 26일 오태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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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정직하고 예의 바른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스스로 실천하는 어린이, 깊이 생각하고 탐구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98년 11월 9일 오태초등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2000년 9월 1일 상모초등학교에서 27학급,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인평리 북삼초등학교에서 6학급을 분리하여 총 33학급으로 개교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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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경서노회 소속 교회. 1991년 3월 31일 구미시 비산동 76번지에서 설립예배를 드렸으며, 1992년 5월 14일 제1대 당회장으로 박희재 목사가 취임하였다. 1993년 3월 23일에는 구미시 원평동 1072번지[송원서로8길 66]로 이사하였으며, 1997년 9월 23일 구미시 오태동 640번지[금오대로9길 18]에 신축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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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조선 후기 상류층의 살림집. ㅡ자형 사랑채와 아래채, ㄱ자형의 정침이 튼 ㅁ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는 조선 후기 상류 주택이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ㄱ자형 겹집이다. 평면은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상방을 두었고, 왼쪽에 2통칸의 안방과 부엌을 두었다. 부엌 앞면으로 1칸씩 돌출시켜 온돌방 1칸을 달아내어 전체적으로 ㄱ자형 평면을 이루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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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공유(公裕), 호는 운정(雲庭). 장금용(張金用)계로서 산음현감 장옥(張鈺)의 8대손이다. 할아버지는 사호옹(四好翁) 장학추(張學樞), 아버지는 장석구(張錫龜)이다. 14세 때 중부인 장석용(張錫龍)에게 입양되었다. 백부는 장석봉(張錫鳳)이다. 장승원은 1885년(고종 22) 증광 문과에 급제한 후 승정원주서를 시작으로 홍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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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이상(而相).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아버지는 청천당(聽天堂) 장응일(張應一), 어머니는 목사 송광정(宋光廷)의 딸로 야로송씨(冶爐宋氏)이다. 형이 소매당(訴梅堂) 장영(張𨥭)이다. 장옥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음직(蔭職)으로 산음현감을 지냈다. 묘소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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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에 경상북도 구미에서 활동한 언론인이자 학자. 장지연은 1864년(고종 1) 경상도 상주목 목내면 동곽리에서 출생하였다. 처음 이름은 장지윤(張志尹)이고 호는 위암(韋庵) 또는 숭양산인(崇陽山人)이다. 소매당 장영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운소(雲沼) 장용상(張龍相)이고, 장석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4세 때 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으로 이거했다가 20세 때 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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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조선 후기 상류층 살림집. 장진동 가옥은 장석봉이 전주판관으로 있을 때 전주에서 목재를 가져와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사랑채와 중사랑채, 안채, 방앗간채가 튼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일자형 건물이다. 평면 구성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2칸씩의 안방과 건넌방을 두었고, 안방의 왼쪽에는 부엌을 두었는데, 부엌과 오른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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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국무총리를 지낸 창랑 장택상의 살림집. ㄱ자형 중사랑채와 ㅡ자형의 사랑채 사이로 난 중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안채가, 오른쪽에는 아래채가 자리 잡아 전체적으로 튼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안채의 왼쪽 뒷면에 3칸 규모의 곳간을 두었다.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1.5칸의 팔작기와집인데, 안채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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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장현광(張顯光)은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이기설에서 일본설(一本說)에 입각하면서도, 이이의 ‘기발이승’을 수용하는 등 독자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일생을 학문과 교육에 힘을 기울였으며, 산림의 한 사람으로서 도덕정치의 구현을 강조하였다. 장현광의 강학 시설로 구미시 임수동에 부지암정사(不知巖精舍)가 있다. 본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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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야은 길재의 충절을 기려 세운 비. 야은 길재는 고려 후기의 인물로서 이색, 정몽주, 권근 등에게서 배웠으며, 벼슬이 문하주서(門下注書)에 올랐으나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개창된 후 태종이 태상박사(太常博士)라는 관직을 내렸으나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 하여 사양하고, 선산에 은거하여 절의를 지켰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