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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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小川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소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윤제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경상북도 경산시와 청도군의 경계 지역에 있는 마을로서, 좁고 가는 소천(小川)에 위치한 마을이라 소천이라 불린다. 1500년경 경주 이씨가 이곳 산세에 마음을 빼앗겨 입향했다고 전해진다.
[명칭 유래]
소천이라는 말은 동쪽에 있는 대천과 대비되는 이름이다. 길이나 너비로 보면 대천보다는 짧고 좁으나 상당히 긴 골을 이루고 있어서 소천이라고 했다.
소천리는 돌고개, 긴 밭, 생미, 신당(新堂)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돌고개 마을은 경산시 용성면 대종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로, 큰 바위가 있는 고개를 넘어야 한다고 해서 돌고개이다. 한자로는 석현(石峴)이라고 표기하였다. 긴 밭 마을은 장전(長田)이라고도 하며, 소천에서는 가장 넓은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다. 마을 위와 아래에 길고 넓은 밭과 농토가 있어서 긴 밭이라고 했다.
생미 마을은 산양(山陽)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마을이 동향으로 앉아 있는 형국이다. 산에 양지바른 곳이라는 뜻에서 산양(山陽)이라 하고, 음이 변하여 생미(生美)라고 했다고 전한다. 신당 마을은 경산시 용성면 곡란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새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는 동일위면에 속해 있었다. 1832년 동일위면이 일위면으로 개칭되었고, 1840년에 다시 외종도면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1906년 종도면으로 바뀐 후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산양동, 신당동, 장전동, 석현동 일부를 병합하여 소천동이라 하고, 금천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소천동에서 소천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자연 환경]
경산시 용성면 부일리에서 발원한 부일천을 따라 내려온 물이 용전리, 용천리, 대종리를 지나서 소천리에 이른다. 이후 동곡리에 이르러 대천(大川)과 합해져서 운문천을 이루어 동창천에 닿는다. 돌고개와 장전 사이에 크게 굽은 내[川]가 흡사 용(龍)이 물을 마시는 형국이라 해서, 용천리와 용전 등 이 주변의 지명들이 용과 관련되어 있다. 부일천을 따라 약간의 경작지가 있으나 대부분 밭으로 활용되고 있는 편이다.
[현황]
2012년 6월 현재 면적은 10.21㎢이며, 총 156가구에 299명[남자 151명, 여자 14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운문면 서지리·대천리, 서쪽은 금천면 갈지리·사전리, 남쪽은 금천면 방지리·운문면 방지리, 북쪽은 경산시 용성면 곡란리·부제리·대종리·용천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행정리로 소천 1리부터 소천 3리까지 있으며, 돌고개, 긴 밭, 생미, 신당 등 네 곳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산비탈을 일구어 밭농사와 논농사로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지방도 919호선이 지나고 있으며, 이 길을 따라 동곡 공용 버스 터미널에서 대천 공용 여객 자동차 터미널로 가는 동곡 순환 버스가 지나간다.
용전 주변 소(沼)를 이루고 있는 바위에 박영수가 일신탕이라는 글씨를 새기고, 첨앙대(瞻仰臺)라는 정자를 세웠다. 장전과 생미의 앞들에는 고인돌이 있어서 옛날부터 사람들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