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3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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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鐵器時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선사/철기 |
집필자 | 김광명 |
[정의]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철을 사용하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개설]
우리나라에서 철기 시대에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토기는 바로 점토 띠 토기[점토대 토기]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철기 시대는 이른바 점토 띠 토기 문화로 이해할 수 있다. 점토 띠 토기는 구연부의 단면 형태에 따라 원형과 삼각형으로 구분된다. 원형 점토 띠 토기 단계에도 어느 정도 철기 문화가 받아들여지긴 했지만, 본격적인 철기 시대 문화는 바로 원형 점토 띠 토기 문화의 바로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삼각형 점토 띠 토기 문화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청도의 철기 시대 유적]
청도 지역의 철기 시대 유적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운문댐의 수몰 지구인 오진리 신석기 시대 암음 유적에서 철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삼각형 점토 띠 토기가 알려져 있고, 청도 사촌리 유적에서도 철기 시대의 유물이 다수 확인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철기 시대의 주거지가 각남면 신당리에서 발굴 조사되기도 하였다.
오진리 유적에서는 신석기 시대 유물층 외에도 상부에서 철기 시대 유물 포함층이 확인된 바 있다. 주로 수습된 유물은 삼각형 점토 띠 토기가 대부분이고, 이보다 더 퇴화된 형식인 홑 구연의 점토 띠 토기도 발견되었다. 유물의 종류는 항아리 종류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아마도 오진리 암음 유적은 신석기 시대 주거지로 이용된 후, 상당 기간이 경과한 후 다시 점토 띠 토기 문화인들이 점거하여 일정 기간 주거지로 이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당리 유적은 청도 지역에서 최초로 점토 띠 토기 문화 관련 주거지가 발굴 조사되기도 하였다. 청도 각남면에 소재한 신당리 유적에서는 점토 띠 토기인들의 수혈 주거지 5동과 수혈 유구 다수가 확인되었다.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 3기, 타원형 2기이고, 주거지의 규모는 길이 337∼636㎝, 너비 200∼415㎝, 깊이 10∼30㎝ 정도이다. 주거지 내부에서는 고래와 아궁이로 추정되는 시설물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유물은 점토 띠 토기 항아리, 주머니 항아리, 두형 토기, 관옥, 돌칼[석도] 등 40여 점이 출토되었다. 신당리 유적의 주거지는 청도 지역에서 최초로 확인된 철기 시대 주거지로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청도읍 사촌리 유적은 특별한 형태를 갖춘 유적의 존재는 발견되지 않았고, 단지 다수의 철기 시대 유물만 확인되었다. 토기류는 삼각형 점토 띠 토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원형 점토 띠 토기만 확인되었으며, 이 밖에 두형 토기, 그물추[어망추], 가락바퀴[방추차] 등이 출토되었다. 석기 유물은 간돌낫[마제 석겸], 돌살촉[석촉], 돌검[석검], 홈자귀[유구 석부], 합인 석부(蛤刃石斧), 반월형 돌칼, 돌끌[석착], 지석 등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이러한 출토 유물로 보아 사촌리 유적을 철기 시대의 이른 시기로 편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