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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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率已山縣 |
이칭/별칭 | 솔이산성(率已山城),솔이산성(率伊山城),솔이산성(率爾山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일대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강재현 |
[정의]
신라 시대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일대에 있던 행정 구역.
[개설]
이서국의 중심 세력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3성[현] 가운데 하나로 757년 지방 제도 개편으로 소산현으로 개칭되기 전까지 불리던 지명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이서국(伊西國)이 사로국(斯盧國)에 병합된 후 구체적인 편제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의하면 “신라가 이서국을 멸한 뒤 이곳에 솔이산(率伊山), 오도산(烏刀山), 경산(驚山) 등 3현(縣)을 두었다.”라고 하였다. 신라에서 군현제가 실시되기 전에 등장하는 현(縣)은 정식 행정 단위라기보다는 성(城)을 중심으로 한 큰 취락이 후대에 한자식으로 고쳐진 것이라고 하겠다. 즉, 현, 성은 같은 ‘마을(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신라가 설치한 3현은 이서국의 유력한 정치 집단의 고지 혹은 군사적 요충지로서 낙동강 중하류의 가야 지역 진출을 위한 거점 확보를 의미한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지리지 밀성군 조에 의하면 “소산현은 본래 솔이산현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고, 지금은 청도군에 합하여 속해 있다.[蘇山縣 本率已山縣 景徳王改名 今合屬清道郡]”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지리지 대성군 조에 의하면 “대성군은 본래 구도성 경내의 솔이산성, 가산현(또는 경산성), 오도산성 등 세 성으로 지금은 청도군에 합쳐 속하게 하였다.[大城郡 本仇刀城境内 率伊山城 茄山縣一云驚山城 烏刀山城等三城 今合屬清道郡]”라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청도군 조에 의하면 “본래 이서소국이었는데, 신라 유리왕이 정벌해서 빼앗고 뒤에 구도성 경내의 솔이산, 경산(혹은 가산), 오도산 등 세 성과 합쳐서 대성군을 설치했다.〔구도(仇刀)는 구도(仇道), 오야산은 오례산이라고도 하는데, 오도산이 그 지방인 듯하다.〕경덕왕 때에 구도를 오악현으로 개칭하고, 경산을 형산현으로 개칭하고, 솔이산을 소산현으로 고쳐서 모두 밀성군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초기에 세 성을 다시 합쳐서 군으로 하여 지금의 이름(또는 도주)으로 고쳤다가 곧 밀성에 붙였다.[本伊西小國 新羅儒理王伐取之 後合仇刀城境內率伊山(伊或作已)驚山(一作茄山)烏刀山等三城置大城郡(仇刀一云仇道一云烏也山一云烏禮山疑烏刀山是其地) 景德王時 仇刀改稱烏岳縣 驚山改荊山縣 率伊山改蘇山縣 俱爲密城郡領縣 高麗初復合三城爲郡 改今名(一云道州) 仍屬密城]”라고 하였다.
『대동지지(大東地志)』 청도 조에 의하면 “본래 이서소국으로 신라가 이를 멸하고 솔이산·오도산·경산 세 현을 설치하였다.[本伊西小國 新羅滅之 置率伊山烏刀山驚山三縣 景德王十六年改三縣名俱爲密城郡領縣]”라고 하였다.
[내용]
솔이산현은 이서국을 정복한 신라가 설치한 행정 구역으로 신라 경덕왕이 소산현으로 고치기 이전까지 불린 사실을 알 수 있다. 솔이산현[솔이산성]은 757년 지방 제도 개편 전에 경산성, 오도산성과 합쳐서 대성군으로 통합된 후 어느 시점에 다시 분리되어 757년 지방 제도 개편으로 지명 개칭 후 밀성군의 영현이 되었다는 기록과 757년까지도 대성군에 통합되지 않고 존속해 오다가 개칭되었다는 두 가지의 배치되는 기록이 남아 있다.
[변천]
신라 유리왕 때 이서국을 정벌하여 취한 후 솔이산현을 두었다. 이서국의 중심 세력 중 하나였던 솔이산현은 757년(경덕왕 16)에 지방 제도 개편으로 소산현으로 개칭된 후 밀성군의 영현이 되었다. 940년(태조 23)에 소산현, 오악현과 합쳐서 청도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