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4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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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城靑年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 있었던 청년 운동 단체.
[개설]
경상북도 청도 지역의 청년 운동 단체는 1920년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1920년 7월에 청도 청년회가 설립된 이후 1923년 성현 청년회(省峴靑年會), 1924년 풍각 수양단(豊角修養團), 1926년 유천 청년회(楡川靑年會), 1927년 풍각 청년회(豊角靑年會)·대성 청년회(大城靑年會)·풍각 기독교 청년회(豊角基督敎靑年會)가 조직되었다.
[설립 목적]
대성 청년회는 ‘사회 진화의 법칙에 의하여 신조선을 건설할 역군의 훈련과 교양을 기하며 회원의 호상 친목과 단결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변천]
1927년 4월 18일 대성 청년회는 청도역 앞 노해준(盧海俊)이 운영하는 운송점 안에서 조직되었다. 1927년 6월 말, 회원은 30명 정도였고, 최이조(崔理兆) 외 4명이 집행 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28년 7월에 이르러 청도 지역에서는 청년 단체를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1927년 민족 협동 전선체인 신간회가 탄생하자 조선 청년 동맹은 협동 전선을 강화하기 위해 각 지역에 단일한 청년 단체를 결성하고자 했다. 이에 1927년 후반에서 1928년 후반까지 각 지역에서 청년 동맹이 조직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청도 지역에서도 일어나 청도 청년회·풍각 청년회·대성 청년회 등 각지의 청년회를 해체하고, 단일 청도 청년 동맹을 조직하였다. 대성 청년회는 1928년 7월 청도 청년 동맹이 조직되면서 발전적으로 해체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성 청년회는 ‘사회 진화의 법칙에 의하여 신조선을 건설할 역군의 훈련과 교양을 기(期)함’과 ‘본 회는 호상 친목과 단결을 도(圖)함’을 강령으로 하였다. 그리고 회원의 교양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대성 청년회는 청도 신읍(新邑)의 청년들을 망라한 조직이었으나 회원은 많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