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7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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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悲寺浮屠群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79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궁현 |
현 소재지 | 대비사 부도 떼 -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7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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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부도 |
양식 | 복발형|석종형 |
관련 인물 | 소요 선사|취운 대사|수월 대사 |
재질 | 석조 |
소유자 | 대비사 |
관리자 | 대비사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에 있는 부도 떼.
[개설]
부도는 입적한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봉안하는 시설로 묘탑적(墓塔的) 성격을 갖는 조형물이다. 불가에서 입적은 열반에 비유되는데 열반이란 수행이 점진적인 단계를 밟으면서 일체의 번뇌가 모두 소멸되었을 때의 경지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부도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열반한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조형물이라 할 수 있다.
대비사 부도 떼는 가까이 위치한 대비사(大悲寺)와 관련된 조선 시대 승탑으로 보인다. 현재의 대비사는 문헌상 신라의 오갑사(五岬寺)의 하나인 소작갑사(小鵲岬寺), 대비갑사(大悲岬寺)로 보아 조선 시대에 새롭게 이건된 것으로 보고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내용을 살펴보면 대비사는 557년(신라 진흥왕 18)년에 신승이 운문산[당시는 호거산]에 들어와 3년 후인 560년(신라 진흥왕 21)에 절을 짓기 시작하여 7년 걸려 오갑사를 완성하였다. 서쪽의 소작갑사 또는 대비갑사는 오갑사 중 하나로, 600년(신라 진평왕 22) 원광 국사가 중창한 사찰이다.
[건립 경위]
대비사 부도들은 대비사와 관련된 고승들의 승탑으로 몸돌에 기록된 내용으로 보아 대비사에 고승들이 많이 머물거나 왕래하였다는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부도의 몸돌에는 소요 선사(逍遙禪師), 취운 대사(翠雲大師), 수월 대사(水月大師) 등 고승들의 부도명이 새겨져 있다.
[위치]
국도 20호선을 따라 청도읍 쪽으로 가다 금천면 소재지를 지나면 영남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인 운강 고택이 나온다. 운강 고택 들목 왼쪽으로 대비사를 가리키는 표지판을 따라 산길을 4㎞ 정도 올라가면 대비지(大悲池)가 있고, 이 연못에서 남쪽으로 0.6㎞ 떨어진 곳에 대비사가 있다. 부근에는 서북쪽으로 박곡리 석조 여래 좌상이, 동쪽으로 운문사가 있다. 대비사 부도들은 현재 대비사 동쪽 부근에 있다.
[형태]
대부분 석종형(石鐘形)으로 6기에 승탑의 주인공을 알 수 있는 명문이 남아 있다. 복발형과 석종형 등 다양한 형식을 보이고 있어 장기간에 걸쳐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석문]
소요 선사[逍遙], 취운 대사[翠雲], 수월 대사[水月] 등의 부도명이 남아 있다.
[현황]
부도들은 총 16기가 2열로 배치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2기는 연화대좌 등의 석조물을 모아 조립한 것이다. 원래 부도들은 대비지 부근에 있었으나, 댐 건설로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현재의 부도전은 2004년 조성된 것으로 부도전과 부도가 있는 곳을 경계로 다리[天眞橋]가 놓여 있어 표지판을 대신하고 있다. 2010년 부도전 뒤 자연 암벽에 천진보탑 불사가 이루어졌다.
[의의와 평가]
부도에 남아 있는 소요 선사, 취운 대사, 수월 대사 등의 부도명을 통해 조선 시대 고승들이 현재의 대비사에 머물려 수행하고 자주 왕래하였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