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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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載寧李氏 |
분야 | 성씨·인물/ 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강래업 |
본관 | 재령 이씨 본관 - 황해도 재령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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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재령 이씨 입향지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금촌리 |
세거|집성지 | 재령 이씨 집성지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금촌리|청도읍 원정리 |
성씨 시조 | 이우칭 |
입향 시조 | 이계손 |
[정의]
이우칭(李禹偁)을 시조로 하고 이계손(李繼孫)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연원]
재령 이씨(載寧李氏)는 경주 이씨(慶州李氏)에서 분적하였다. 경주 이씨 중시조인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의 후손 이우칭(李禹偁)은 고려 때 보조공신(補祚功臣)에 녹훈되고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후 재령군(載寧君)에 봉해졌는데, 후손들이 이우칭(李禹偁)을 시조로 받들고 재령을 관향으로 삼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입향 경위]
조선 세종 때인 1400년대 초에 자손이 번성할 터전을 찾던 이계손(李繼孫)이 밀양 소음리에서 청도군 이서면 금촌리로 이거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계손은 전라도 고부 군수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었고, 임기를 마치고 떠나올 때 평소 애용했던 벼루 한 벌만 들고 돌아와 청렴한 공직자의 태도에 깊은 감동을 받은 고을 사람들이 송덕비를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사정공파(司正公派) 6세손 이철권(李鐵拳)이 매전면 온막에 입향하였고, 후손인 이몽상(李夢祥)이 시묘살이를 위해 청도읍 원정리로 이거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황]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도군 내에 104가구 20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서면 금촌리는 청도의 대표적인 재령 이씨 집성촌으로, 1970∼80년대에는 70여 가구가 거주하며 마을 전체가 재령 이씨로 가득하였다고 전해지지만 2012년 현재 약 50여 가구가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청도읍 원정리에 식성군파[문헌공파] 이운용(李雲龍)의 후손 10여 가구가 집성촌을 이루어 생활하고 있다.
[관련 유적]
관련 유적으로는 이서면 흥선리에 이계손을 모시는 고례재, 이서면 금촌리에 이이(李栭)를 추념하기 위해 건립된 연호정, 이백신(李白新)과 이결을 추념하는 재실 현룡재, 이운용을 모시는 금호 서원, 청도읍 원정리에 충현사와 석동 서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