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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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州邢氏 |
분야 | 성씨·인물/ 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래업 |
본관 | 진주 형씨 본관 - 경상남도 진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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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진주 형씨 집성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부야리 가마실 |
성씨 시조 | 형옹 |
입향 시조 | 형대걸 |
[정의]
형옹(邢顒)을 시조로 하고 형대걸(邢大傑)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연원]
진주 형씨(晋州邢氏)의 시조 형옹(邢顒)은 중국 당(唐)나라 태종(太宗) 때 사람으로, 고구려 영류왕(榮留王)의 요청에 따라 8학사(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평양에 들어와 정착하였다. 형웅의 13세손 형방(邢昉)이 고려 명종(明宗)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고, 15세손 형공미(邢公美)가 충렬왕(忠烈王) 때 왜구 정벌에 공을 세우고 진양군(晋陽君)에 봉해졌다. 이에 후손들이 형방을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진주(晋州)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입향 경위]
1700년대 초 밀양에 살던 형대걸(邢大傑)이 청도군 각남면 사리골로 이거하여 정착하였다. 1800년대 중엽에 후손인 형주일(邢周一)이 청도읍 부야리 가마실로 이주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황]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도군 내에 13가구 4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2012년 현재 청도읍 부야리 가마실에 10가구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