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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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吉雨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 259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925년 2월 10일 - 이길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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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1년 1월 27일 - 이길우 항일 비밀 결사 동진회를 조직하고 총무로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43년 9월 - 이길우 폭탄 마련을 위해 만주로 가던 중 대전 부근에서 체포됨 |
몰년 시기/일시 | 1945년 6월 2일 - 이길우 부산 형무소에서 옥중 순국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이길우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이길우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 259번지 |
활동지 | 이길우 활동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 259번지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항일 비밀 결사 단체 동진회 조직 |
[정의]
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길우는 1925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內湖里)에서 출생하여 1945년 사망하였다. 이길우는 1941년 항일 비밀 결사인 동진회(東進會)를 조직하고 총무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1937년 중일 전쟁 이후 일제의 폭압 정치와 대륙 침략전의 전시 체제가 한층 고조되고 있었다. 이에 1941년 1월 27일 청도읍 유호리의 이길우를 비롯한 20대 청년들은 박상노(朴相老)의 집에 모였다. 당시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은 이길우(李吉雨)[1925∼1945]를 비롯하여 이형우(李亨雨)[보성 전문 학교 학생]·백영목(白泳穆)[철도 운송직]·이상도(李相道)·허남귤(許南橘)·김용덕(金龍德)·박정근(朴丁根)·최선호(崔善鎬)·이인우(李麟雨)·이상학(李相鶴) 등 11명이었다. 이들은 “오늘 이 자리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뜻있는 모임이 되게 하자.”라는 제의를 하고, 동쪽으로 진격하여 왜놈을 거꾸러트리자는 뜻에서 회명을 동진회(東進會)로 정했다. 동진회는 회장에 허남귤, 총무에 이길우를 추대하였다.
동진회는 월 1회 정기 모임을 가지고 각자의 활동을 분석하고 수집한 정보를 교환하기로 하였으며, 독서와 토론을 통해 민족 의식을 배양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1941년 7월 만주로 돌아가는 이상도에게 재만 독립운동 단체와 기맥을 통하고 항일 투쟁의 방략을 지령받기로 하였다.
1942년 2월 15일 음력설에 동진회 회원들은 다시 모였다. 이들은 본격적인 지하 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하부 조직인 농민 친목회(農民親睦會)와 소년 독성회(少年獨成會)를 조직하기로 하였다. 1942년 10월 농민 친목회는 이태우(李泰雨)[유천 공립 보통학교 제1회], 이현수(李鉉守)·장동주(張東周)·이기우(李己雨)[유천 공립 보통학교 제2회] 등이 농민들을 선도하여 일제의 강제 공출 반대, 학병과 지원병 모집 반대, 신사 참배 거부 투쟁, 악덕 관리의 고발, 배급 부정의 폭로 등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대항하였다. 소년 독성회는 이상탁(李相卓)·이희우(李喜雨)[1943년 당시 18세, 유천 공립 보통학교 2년]·박진노(朴珍老)[16세, 유천 공립 보통학교 3년]·허원구(許元九)·허태근(許泰根) 등 15명으로 조직되었다. 소년 독성회는 16세에서 17세의 소년들에게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고 유사시 행동 대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한편 동진회는 동지를 만주로 파견하여 그곳의 독립투사들과 접선케 하였다. 또한 일제의 군수품 수송을 방해할 목적으로 철도와 경찰관서를 폭파할 계획을 세우고 이에 필요한 폭탄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길우는 1943년 9월 폭탄을 마련하기 위하여 만주로 향하던 중 대전 부근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길우는 가혹한 고문을 당한 끝에 고문의 여독으로 1945년 6월 2일 부산 형무소에서 옥중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1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