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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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在憲 |
이칭/별칭 | 청암(靑巖)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손복수 |
출생 시기/일시 | 1927년 - 김재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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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46년 - 김재헌 경주 서라벌 예술학교에서 손일봉에게 미술 교육 받음 |
활동 시기/일시 | 1960년 - 김재헌 지역 문화 예술 단체인 도주회 회원으로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70년 - 김재헌 대구 공화당 화랑에서 첫 개인전 가짐 |
활동 시기/일시 | 1982년 9월 10일 - 김재헌 대구 현대 화랑에서 제2회 개인전을 가짐 |
활동 시기/일시 | 1985년 - 김재헌 한·일·중 서예 문화 교류전에 출품 |
활동 시기/일시 | 1987년 - 김재헌 프랑스 국제 미술전에 초대 출품 |
활동 시기/일시 | 1987년 - 김재헌 독일 하바노 국제 미전에도 초대 출품 |
몰년 시기/일시 | 1996년 2월 - 김재헌 사망 |
출생지 | 김재헌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
거주|이주지 | 김재헌 거주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동 |
성격 | 서예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한·중·일 서예 문화 협회 운영 위원 |
[정의]
경상북도 청도 출신의 서예가.
[개설]
김재헌(金在憲)[1927∼1996]은 1927년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에서 김학봉(金鶴鳳)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서(書)와 미술에 남다른 취미를 가지고 스스로 법첩(法帖)을 익혔으며 청도에서 흙을 사랑하듯 필묵(筆墨)을 사랑하면서 지역 예술 문화 발전을 위해 공헌하였다.
[활동 사항]
김재헌은 청도 소학교에 재학하던 중 일본인 선생에게 미술 지도를 받으며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1946년 경주 서라벌 예술학교에서 손일봉(孫一峰)에게 미술 교육을 받다가 학교 재정난과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고향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부친의 가게 문에 고무신 광고 그림을 그려 붙였는데, 여성용 하얀 고무신을 양쪽에서 여러 사람들이 당기는 모습을 정겹게 표현한 그림이었다. 김재헌은 이때부터 미술 재능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의 보생 고무 산업 주식회사에서 일하다 1960년대 초반 청도읍 고수동으로 귀향하였다. 이후 과수 농사를 하면서 짬짬이 회화·사군자·서예의 법첩(法帖)을 익혔으며 1960년 중반에는 지역 문화 예술 단체인 도주회(道州會)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서너 차례 전시회에 참여하였다.
1970년 대구 공화당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82년 9월 10일부터 9월 15일까지 국제 로타리 제370지구 청도 로타리 클럽 주최로 대구 현대 화랑에서 제2회 개인전을 가졌다. 전시된 작품은 사군자(四君子)·해서(楷書)·초서(草書)·예서(隸書)·갑골문(甲骨文) 등이었다.
이후 김재헌은 국제 문화 교류전에 여러 차례 참여하여, 1983년 주한 일본 대사관이 주최한 한·일 미술 초대전에 출품하였으며 1985년에는 한·일·중 서예 문화 교류전에 출품하였다. 1987년에는 프랑스 국제 미술전에 초대 출품했으며 1987년 독일 하바노 국제 미전에도 초대 출품하였다. 김재헌은 부산에서 청암 서예 학원을 설립·운영하면서 각종 공모전에도 출품하여 입상하였다. 또한 일본 교육 서도회 회원, 국제 문화협회 초대 작가, 한·중·일 서예 문화 협회 운영 위원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다 1996년 2월 세상을 떠났다.
[상훈]
김재헌은 제1회 전국 서예 공모전을 비롯하여 각종 공모전에 출품하여 수차례 입상하였다. 또한 한국 문화 예술 진흥원장상을 수상하였고, 1987년 프랑스 국제 미술전 초대 출품 시장 감사장과 1992년 현대 서화 협회 한문 서법 교육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1992년에는 국제 예술 문화 협회 교육 지도상을, 1992년에는 중국 미술 연구회 감사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