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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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近代敎育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태호 |
[정의]
구한말에서 광복 이전까지 경상북도 청도군 지역에서 이루어진 근대식 교육.
[개설]
1. 개화기
경상북도 지방에 최초로 설립된 근대 교육 기관은 대구 지역의 일본 거류민 자녀를 위해 1899년 세운 달성 학교로 알려져 있다. 경상북도의 경우에는 유교적 전통과 유림의 재지적 기반이 강했으므로 신교육 기관의 설립에 대해 비교적 보수적이었다. 그러나 애국 계몽 운동이 확산되고 선각자들의 노력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학교 설립이 점차 증가하여 경상북도 내에는 약 370여 개의 학교가 설립되었고 학생 수는 4,500명에 달했다.
이들 각 사립 학교는 지방관과 군내 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하였는데 대부분 향교 서원 등을 수리하여 사용하거나 유지의 출연에 의하여 신축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각 학교의 교육 연한은 보통 3년 정도였고, 교사는 주로 신학문에 능하고 일본어를 아는 사람을 초빙하여 왔다. 그러나 1908년 사립 학교령이 반포되어 각 학교는 기본금 3,000원의 재원을 마련하기 어려워 많은 사립 학교들이 폐교의 위기에 처했다. 당시의 대부분의 사립 학교들은 학교 운영 경비를 유지들의 출연에 주로 의존하였기 때문에 장기 대책이 없었다. 그 결과 각 사립 학교들은 폐지된 서원, 향교 등의 토지를 학교 재원으로 마련하려 했지만 유림들의 반대로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완고한 유림, 서당 훈장 등은 신학문이 흥하면 구학문이 쇠퇴한다고 사립 학교의 신설을 반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도 지역은 영남의 다른 지방과 같이 유교적 전통이 강했기 때문에 근대 교육이 1906년 이후에 사립 학교들이 설립되면서 늦게 시작되었다.
2. 일제 강점기
일제는 초등학교 시설에 대한 정책을 1910년대에는 6면 1교제를 추진하였고, 1920년대에는 3면 1교제, 1930년대 전반기에는 1면 1교제, 1930년대 후반기에는 1면 2교제를 실시하였다.
이것은 당시에 교육 인구의 증가와 고조되는 교육열을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하였다. 더욱이 의무 교육제 실시를 위한 시설 확장에는 미흡하였다. 보통 교육의 전통적인 형태로 존속되어 온 서당 교육은 한일 합방을 전후한 시기에는 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방임 상태로 놓여 있었으나 한일 합병이 되고 난 이후에는 일제의 보통 교육에 반대해서 서당 교육이 활발해졌다. 그러나 일제가 1918년 서당 규칙을 발표하고 서당에 대한 관의 간섭이 심해지자 서당 교육은 점차 쇠퇴해지고 말았다. 또한 일제는 서당을 개량한다는 명목으로 많은 간이 학교를 세웠으며, 청도군에도 이 시기를 전후하여 많은 간이 학교가 세워졌다.
[청도의 근대 교육 기관]
1. 개화기에서 구한말까지
1905년 이후 계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경상북도에도 많은 애국 계몽 단체가 결성되었다. 청도 지역에도 독자적인 애국 계몽 단체인 운산 친목회(雲山親睦會)와 간친 교육회(懇親敎育會)가 국권 회복을 위한 교육 진흥과 산업 진흥을 목표로 운문면의 선각적인 유림에 의하여 설립되어 활동하였다.
청도군에서는 1898년부터 1910년까지 10개의 신교육 기관이 설립되었다. 1898년 3월 대성면 유호리에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 출신의 일진회 지회장 윤대섭이 설립한 사립 유천 학교는 경상북도 최초의 신교육 기관이다. 사립 개명 학교는 1905년 일본 유학생인 김명옥이 일본 헌병 분견소장과 청도 군수의 후원으로 설립한 소학교로 교사는 일본인이었고 학생은 53명이었다.
사립 도동 학교는 윤대섭이 1906년 자신의 고향인 운문면 공암리에 설립한 소학교였다. 사립 의명 학교는 유천 학교를 계승하여 1906년 진두환, 김병수 등이 설립한 소학교이다. 사립 유명 학교는 1906년 청도 지역의 유림들이 향교 재정을 운용하여 설립한 소학교이다. 이후 1909년 사립 청도 보통 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가 1911년 청도 공립 보통 학교로 변경하였다.
사립 신명 학교는 1906년 박병현이 자신의 문중 소유의 전답을 기본 재산으로 설립하였다. 1917년 사립 선암 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가 1919년 금천 공립 보통 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사립 온명 학교는 이정희가 설립하였으며, 1924년 매전 공립 보통학교로 변경되었다. 사립 문명 학교는 1907년 운문면 신원리에서 설립되었고, 화양면 송금리에는 사립 덕명 학교가 설립되었다.
2. 일제 강점기
1908년 일제는 사학 탄압의 방법으로 사립 학교령을 공포하여 학교의 설립은 물론 많은 사립 학교들이 운영난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공립학교로의 전환이 강조되었다. 1919년 3·1 독립 운동 이후에는 문화 정치의 일환으로 교육 시설이 확대되면서 초등 교육과 실업 교육이 확장되었다.
이 시기에 청도 지역에는 도주 학원, 성현 학원, 영동 학원, 내동 의숙, 보성 학원, 남양 학원 등의 농촌 간이 학교가 설립되었고 청도읍, 금천면, 풍각면, 매전면, 이서면 등지에는 공립 보통 학교가 설립되었다. 1927년 청도군에는 공립 보통 학교 5개교, 사립 보통 학교 1개교, 사립 강습소 8개소, 개량 서당 41개소, 재래 서당 40개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