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7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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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聖谷-里-堂山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성곡 3리 배안골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여수경 |
의례 장소 | 부처 바위 -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 배안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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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민간 의례|동제 |
의례 시기/일시 | 정월 초이렛날[음력 1월 7일] 밤 11∼12시 |
신당/신체 | 부처 바위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에서 해마다 정월 초이렛날에 올리는 마을 공동 제의.
[개설]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의 배안골 마을에서는 정월 초이렛날[음력 1월 7일]이 되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동제를 올린다.
[연원 및 변천]
성곡 3리 배안골 동제 는 성곡댐이 들어서기 전부터 전승되어 있었는데, 동제당인 할매당과 할배당은 현재 성곡댐이 들어선 곳 안쪽에 있었다. 1999년부터 착공한 성곡댐이 조성되면서 할매당과 할배당은 물을 가두기 시작하기 전인 2007∼2008년 사이에 수몰되지 않는 곳으로 옮겼다. 하지만 이 또한 약 2010년 무렵에 몰아친 태풍 때문에 마을 뒤편에 있는 보가 무너지면서 휩쓸려 내려가자 마을에서는 다시 당을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이때 마을에서는 성곡재를 넘어가는 곳에 있는 부처 바위로 마을 당신(堂神)을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부처 바위는 할매 바위라 불리면서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에서도 기도를 드리려고 찾는 장소였다. 이후에 마을에서는 부처 바위를 당신으로 모시면서 2013년 현재까지 동제를 올리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성곡 3리 배안골 동제 를 올리는 부처 바위는 성곡댐을 돌아가는 도로변에서 성곡재로 올라가기 전에 보이는 좌측 산비탈 중간에 있다. 바위의 크기는 높이 2m 50㎝ 정도이며 그 생김새가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 주변으로는 잡목들이 둥글게 두르고 있다.
[절차]
성곡 3리 배안골 동제 는 정월 초이렛날 밤 11∼12시 사이에 올린다. 성곡댐이 들어서고 수몰되기 전에는 마을에서 길일인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을 따져서 제관을 선출하였지만 현재는 마을의 전체 가구 수가 세 가구뿐이라 연로한 한 집을 제외한 나머지 두 가구에서 돌아가며 제관을 담당한다.
금줄은 제삿날 아침 마을에서 모두 함께 준비하여 두른다. 한지를 끼워 만든 금줄을 동신당 주변과 부처 바위 주변으로 두른다. 과거에는 집집이 모두 금줄을 두르고 황토를 뿌렸지만 현재는 부처 바위에만 두른다. 제물은 풍각면에서 열리는 5일장인 풍각장을 이용하여 닭 세 마리와 건해삼 두 개, 그리고 밥과 나물, 과일, 떡, 술 등을 준비한다.
닭 한 마리와 건해삼 하나, 떡과 술을 먼저 준비하여 산신제를 먼저 지낸다. 산신제에서는 축문과 소지(燒紙)[부정을 없애고 소원을 빌려고 태우는 흰 종이]를 올리지 않고, 잔을 한 잔만 올리고 절하는 단잔 배례(單盞拜禮)로 제의를 마친다. 산신제를 마친 후에는 올린 건해삼을 숨겨 둔다. 그다음으로 부처 바위에 닭 두 마리, 건해삼 하나, 밥과 탕, 나물, 떡, 술을 준비하여 제를 올린다. 부처 바위에 제를 올릴 때에는 축문과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부처 바위와 마을을 위해서 올리는데, 주민의 수가 적어 모든 주민의 이름을 부르며 소지를 올린다.
[부대 행사]
동제를 올린 후 동회장의 집에 모여서 함께 음복한다. 세 가구가 거주하는 배안골에서는 특별히 동회를 개최하지는 않으며 다만 함께 모여 음복하고 마을 일에 대하여 논의한다.
[현황]
성곡댐 건설과 함께 대부분의 마을 주민이 이주하고 현재 성곡리 배안골에는 세 가구만이 거주한다. 2012년까지 세 가구가 돌아가며 동제를 담당하였지만 한 가구가 이제 제를 담당할 수 없을 만큼 연로하여 현재는 두 가구가 돌아가며 동제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마을에서는 동제를 중단할 생각이 없다.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중요하며 진행할 수 있을 때까지는 동제를 지속하려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