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8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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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哲-里古哲洞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고철리 고철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여수경 |
의례 장소 | 할배당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고철리 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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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할매당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고철리 559 |
성격 | 민간 의례|동제 |
의례 시기/일시 | 정월 초이렛날[음력 1월 7일] 0시 |
신당/신체 | 할배당[나무, 입석]|할매당[입석]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고철리에서 해마다 정월 초이렛날에 올리는 마을 공동 제의.
[개설]
청도군 이서면 고철리의 고철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이렛날[음력 1월 7일]이 되면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며 할매당과 할배당에 동제를 올린다.
[연원 및 변천]
고철리 고철 동제 가 마을에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전하는 바는 없다. 다만 마을이 생긴 16세기 초부터 할배당과 할매당에서 동제를 지내고 있다고 전해진다.
마을에서는 오래전 1980년대 초반 무렵에 마을의 신작로가 생길 때 그곳에 있던 할배당을 없애면서 동제를 중단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후로 마을에서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젊은 사람들이 외지에 나가서 사고를 당하는 등 우환이 끊이지 않자 마을의 한 젊은이가 용하다고 하는 바위를 하나 가지고 와서 현재의 할배당으로 모셨다고 한다. 그리고 도로가 나면서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으로 떨어졌던 할매당도 함께 모시기 시작하면서 2013년 현재까지 동제가 중단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고철리 고철 동제 의 할배당은 이서면 팔조리에 가까운 마을 끝자락의 논 가운데에 있다. 할배당은 입석 한 기와 주변 느티나무 한 그루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변으로는 높이 1m 정도의 석축이 둥글게 둘러져 있다.
할매당은 할배당의 맞은편 도로 건너편에 있는 입석이다. 2011년 6차선 도로가 완공되면서 할매당은 도로보다 낮은 곳에 있어 시야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할매당은 도로 가까이에 조성된 농로의 오른쪽에 있는데 삼각뿔 모양의 입석으로, 높이 40㎝ 정도이며 마을 방향으로 제단이 조성되어 있다.
[절차]
고철리 고철 동제 는 음력 정월 초이렛날 0시에 올린다. 사흘 전 마을에서는 할배당과 할매당에 황토를 뿌리고 금줄을 두르는데, 금줄에는 중간 중간 흰 종이와 솔가지를 꽂아 둔다.
제의의 진행은 헌관(獻官)과 제관(祭官), 두 명이 도맡는다. 보통 제사가 끝내는 파제삿날에 이듬해의 제관 한 명과 헌관 한 명을 선출한다. 헌관이 되면 이듬해에는 제관을 담당해야 하고, 제관이 되면 이듬해에 헌관이 되어야 해서 기본적으로 2년은 도맡아서 동제를 지내게 된다.
2012년까지 제관과 헌관은 모두 성인 남자가 맡아서 지냈다. 2013년부터는 마을의 홀로 사는 노인 중에 여자가 많아서 헌관은 여자가 맡을 수 있게 바뀌었지만 제관은 여전히 남자가 지내는 것으로 정하면서 남자 제관 한 명, 여자 헌관 한 명으로 진행되고 있다.
제물은 6일 아침 이서면의 이서장을 이용하여 산다. 집에서 지내는 제물과 같은 것을 사용하는데, 보통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이 자기 집에서 쓰는 것을 주로 구매한다. 하지만 할배당에 올리는 네 마리의 건해삼은 빠지지 않는 제물 중 하나이다. 제의 시간이 되면 준비한 제물을 가지고 할배당에 상을 차린다. 그러고 나서 할매당으로 가서 할배당과 함께 제사를 올리려고 모시러 왔다고 이야기한다. 간단히 술을 올리고 할매당을 할배당으로 모시고 가서 할배당에서 본격적인 제를 올리게 된다.
제의 순서는 유교식 기제사와 동일하며, 마지막으로 축문을 읽고 소지(燒紙)[부정을 없애고 소원을 빌려고 태우는 흰 종이]를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제를 마치면 건해삼 네 개는 할배당 주변에 동서남북으로 숨겨 두고, 건어물과 백찜[백설기]을 한지에 곱게 싸서 주변에 놓아둔다. 할매당에도 흰떡 조금을 주변에 뿌려 놓는다. 제사를 지낸 음식은 간단히 음복하고 제물을 그대로 마을 회관으로 옮긴다. 아침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제관과 헌관에게 인사를 건넨 후 함께 음복한다.
[현황]
고철리 고철 동제 는 예전에는 대내림을 통하여 제관을 선출하거나 또는 길일인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을 따지고 집안에 임신한 사람과 우환이 없는 사람 등으로 까다롭게 선정하였다. 그러다가 인구의 감소와 노령화 등으로 제관 선출이 까다롭고 도로의 개설에 따라 동제당도 없어지자 마을에서는 동제를 중단하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우환과 함께 어려움이 찾아오자 마을에서는 다시 동제를 지내게 되었고 현재까지 중단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제관을 선출하는 것은 마을에서 큰 고민거리 중 하나이다. 제관은 남자가 맡아야 한다는 믿음과 여자는 동제에 참석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성인 남자들이 도맡아 하던 동제였지만, 홀로 사는 노인이 많아지고 게다가 대부분이 여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남자들에게만 제관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 마을의 결론이었다. 그리하여 마을에서는 남자와 여자 각각 1명을 선출하여 제관을 맡기기로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라도 동제는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마을 주민들의 생각이다. 제관의 선출과 제물의 차림새 등이 조금씩 변형되고 간소화되었지만 고철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동제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