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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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仁燮 |
영어공식명칭 | Yun Inseop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성환 |
출생 시기/일시 | 1900년 10월 09일 - 윤인섭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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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20년 - 윤인섭 우수영보통학교 재학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4월 - 윤인섭 해남에서 독립 만세 운동 전개 |
몰년 시기/일시 | 1967년 05월 24일 - 윤인섭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3년 - 윤인섭 대통령표창 수훈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윤인섭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
출생지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152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길 330-1[학동리 152] |
학교|수학지 | 우수영보통학교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동헌길 33-6[선두리 620-1] |
활동지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149호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3]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1920년 문내면 독립 만세 운동 참가 |
[정의]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1900년 10월 9일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152에서 태어난 윤인섭(尹仁燮)[1900~1967]은 1920년 문내면에서 발생한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전국 각지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었고, 해남군의 경우 1919년 4월 6일 해남면에서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조선시대 수군절도사영이 있었으며 1597년 명량대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주민들의 항일의식이 강했던 우수영(右水營)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지 못한 점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있던 윤인섭은 1920년 4월 21일 우수영보통학교의 운동회가 열리던 날 같은 학교를 다니던 전유봉(田酉峯)·박기술(朴奇述) 등과 만나 독립 만세 시위를 벌일 것을 계획하였다. 윤인섭은 우수영보통학교 생도 임동수(林東秀)의 집에서 최이규(崔伊奎)·주봉옥(朱奉玉)·박규성(朴圭星)·박용문(朴用文)·이준섭(李俊燮)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시위 계획을 세우는 한편, ‘독립 만세 지원자 성명표’를 만들어 연명으로 도장을 찍고 결의를 다졌다.
1920년 4월 22일 오후 윤인섭은 전유봉·이준섭과 함께 동외리(東外里) 성벽 밖에서 태극기 3개를 만들어 하나씩 나눠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학생들과 함께 우수영 읍내로 행진하였다. 시위대가 행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우수영보통학교 교사인 장지훈(張志勳)·이우섭(李雨燮)이 달려와 만류하며 태극기를 빼앗고 시위를 제지하였다. 이 일로 윤인섭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1920년 5월 13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목포교도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윤인섭은 1967년 5월 24일 사망하였다.
[묘소]
윤인섭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3]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149호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윤인섭의 공적을 기려 198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