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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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千甫汝 |
영어공식명칭 | Chun Boye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성환 |
출생 시기/일시 | 1870년 12월 3일 - 천보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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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 천보여 해남읍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 |
몰년 시기/일시 | 1929년 02월 18일 - 천보여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1년 - 천보여 대통령표창 수훈 |
출생지 | 전라도 해남현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용정리 |
거주|이주지 |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
활동지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1919년 4월 11일 해남읍 독립 만세 운동 참가 |
[정의]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천보여(千甫汝)[1870~1929]는 1870년 12월 3일 해남군 해남읍 용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1일 해남읍 장날 펼쳐진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6일 해남공립보통학교 생도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후 김동훈(金東勳) 등 지역의 청년들이 해남공립보통학교 생도들의 뒤를 이어 4월 11일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김동훈·이형춘(李亨春)·안창석(安昌錫)·손승옥(孫升玉)·손태옥(孫太玉)·남상권(南相權)·김흥봉(金興鳳)·김흥룡(金興龍) 등은 읍내의 유지 김경두(金璟斗)·한창수(韓昌洙)·김영배(金永培)·천석균(千錫均) 등과도 연락을 취하여 뜻을 모았다.
청년들은 해남읍 남동리에 있었던 김동훈의 집에서 종이 태극기 800여 매와 당목으로 대형 태극기 6개를 만들어 시위를 준비하였고, 4월 11일 해남읍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1919년 4월 11일 청년들은 미리 제작하여 천병유(千炳有)의 집에 보관하였던 태극기를 큰길로 운반하였고, 정오를 기하여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에 동참하여 해남읍 곳곳을 누비는 사람들의 대열이 1,000여 명에 달하였다.
당시 북평면에 거주하고 있던 천보여는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주동자인 김동훈 등이 체포되는 것을 본 뒤 군중들을 격려하며 재차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체포되었다. 이 일로 1919년 4월 17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선고받았다.
천보여는 1929년 2월 1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1년 대한민국 정부는 천보여의 공적을 기려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