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7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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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多仁面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영진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있는 집성촌.
[개설]
다인면은 조선 시대 다인현 지역이다. 서릉리(西陵里)·산내리(山內里)·가원리(佳院里)·송호리(松湖里)·도암리(陶岩里)·평림리(平林里)·덕지리(德池里)·양서리(陽西里)·용곡리(龍谷里)·봉정리(鳳井里)·달제리(達堤里)·삼분리(三汾里)·외정리(外井里)·용무리(龍武里)·신락리(申樂里) 등 16개 법정리와 38개 행정리, 170여 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에는 평해 황씨, 안동 김씨, 진성 이씨, 경주 김씨, 밀양 박씨, 영일 정씨, 동래 정씨, 김녕 김씨, 남원 양씨, 경주 최씨, 김해 김씨, 경주 이씨가 대성을 이루어 살고 있다.
[형성과 변천]
평해 황씨는 산내리와 신락 1리에 세거하고 있다. 두 마을의 평해 황씨들은 검교공파의 13세 황계향의 자손들이다. 신락 1리로의 입향 경위는 미상이나 산내리는 1609년에 황의중이 처음 입향하여 그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동 김씨는 송호 1리, 송호 2리, 용곡 3리에 세거하고 있다. 안동 김씨들은 1525년 송호 2리 사호 마을에 먼저 입향하여 세거 집성촌을 이루었고, 그 후 송호 1리에 분가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송호 1리는 내송화와 외송화라는 2개의 자연 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두 마을 모두 안동 김씨 집성촌인데, 1600년대 후반에 이웃한 송호 2리 사호 마을에 살던 김대열이 내송화에 입향하여 그 후손들이 세거하게 되었고, 외송화는 내송화에 살던 김온순이 분가하여 마을을 개척한 후 후손들이 세거하게 되었다. 용곡 3동 우실 마을은 1600년대 후반에 김세청이 입향한 이래 세거지가 되었다.
진성 이씨는 송호 3리에 세거하고 있다. 1600년대에 평해 황씨들과 거의 같은 시기에 입향하여 세거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현재는 대부분 진성 이씨들이고 평해 황씨는 거의 없다.
경주 김씨는 도암 1리와 봉정 1리, 봉정 2리에 세거하고 있다. 도암 1리 경주 김씨들은 조선 중종 때 신라 경순왕 26대손인 김현신이 입향하여 마을을 개척한 이래 집성촌을 이루었다. 봉정 2리 경주 김씨들은 김삼성이 임진왜란을 피해 봉정 2리 동정 마을에 입향한 이래 세거 집성촌이 되었다. 그 후 김씨 가구가 늘어나자 봉정 1리로 이거하여 지금의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영일 정씨는 덕지 1리에 세거하고 있다. 본래 능성 구씨들이 개척한 마을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영일 정씨들이 입향하여 세거 집성촌을 이루었다.
동래 정씨는 덕지 2리에 세거하고 있다. 조선 선조 때 정구성이 지금의 상주 중동에서 이 마을로 입향한 이래 세거지가 되었다.
김녕 김씨는 덕지 3리에 세거하고 있다. 조선 선조 때 생육신 김문기(金文起)의 5대손인 김진엽이 상주에서 이곳으로 입향한 이래 그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남원 양씨는 덕미 1리에 세거하고 있다. 박순호가 개척한 마을에 임진왜란 직후 남원 양씨들이 입향하여 오랜 세거지가 되었다. 인근한 신평면의 청운 2리에도 남원 양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으며, 단밀면의 낙정 마을도 남원 양씨들의 씨족 마을이었던 것으로 볼 때 과거 이 일대에 남원 양씨의 분포가 상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주 최씨는 양서 1리와 달제 2리에 세거하고 있다. 양서 1리는 약 300년 전 최무봉이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우음동에서 입향한 이래 최씨들의 세거 집성촌이 되었다. 4개의 자연 촌락으로 구성된 달제 2리의 최씨들은 자연 촌락인 달동 마을과 기련 마을에 집단 거주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최성진이 지금의 달동 마을에 입향한 이래 후손들이 세거하다가 재차 기련 마을로 이거하여 집성촌의 면모를 보이게 되었다.
밀양 박씨는 도암 1리와 양서 2리 진두 마을에 세거하고 있다. 밀양 박씨들이 도암 마을로 입향한 경위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양서리 진두 마을 박씨들은 1800년대에 박태수가 입향한 이래 세거 집성촌을 이루었다.
김해 김씨는 용곡 1리와 용곡 2리에 세거하고 있다. 김해 김씨들은 용곡 2리 반룡 마을에 먼저 입향하였고, 그후 김씨 후손들이 용곡 1리 동동 마을에 이거하여 또 다른 집성촌을 이루었다. 반룡 마을에 입향한 김해 김씨 입향조는 조선 광해군 때 좌승지를 지낸 김진수이고, 반룡 마을에 살다가 동동 마을에 입향한 김씨들의 입향조는 김진수의 6세손인 김계조이다.
경주 이씨는 신락 1리와 신락 2리에 세거하고 있다. 신락 1리는 경주 이씨들이 평해 황씨들과 함께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으며, 이웃한 신락 2리에도 경주 이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두 마을 모두 입향 경위에 대한 기록은 없다.
[현황]
다인면의 대표적인 집성촌은 산내리와 신락 1리, 송호 1리, 송호 2리, 송호 3리, 용곡 3리, 도암 1리, 봉정 1리, 봉정 2리, 덕지 1리, 덕지 2리, 덕지 3리, 덕미 1리, 양서 1리, 양서 2리, 달제 2리, 용곡 1리, 용곡 2리, 신락 1리, 신락 2리 등이다.
산내리와 신락 1리는 평해 황씨의 집성촌이다. 『의성 군지』에 따르면 1998년 현재 황씨들이 각각 40여 가구가량 살고 있다. 또한 산내리에는 평해 황씨들의 재실인 산영재가 있다.
송호 1리, 송호 2리, 용곡 3리는 안동 김씨의 집성촌이다. 안동 김씨들은 1998년 현재 송호 1리에 50가구, 송호 2리에 40가구, 용곡 3리에 20가구가량 살고 있다. 송호 2리에는 효자 김제균을 기리는 효자각과 김용한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낙옹정이 있고, 용곡 3동 우실 마을에는 안동 김씨 문중의 제청인 영모제가 있다. 송호 3리는 진성 이씨의 집성촌으로 1998년 현재 이씨들이 50여 가구를 차지하고 있다,
도암 1리는 경주 김씨와 밀양 박씨의 집성촌이다. 1998년 현재 106가구가 사는 큰 마을로 김씨가 45가구, 박씨가 40가구가량 살고 있다.
봉정 1리와 봉정 2리는 경주 김씨의 집성촌으로, 봉정 1리에는 1998년 현재 20여 가구의 김씨들이 살고 있으며, 봉정 2리에는 50여 가구의 김씨들이 살고 있다.
덕지 1리는 영일 정씨의 집성촌이다. 1998년 현재 59가구 중 50여 가구의 정씨들이 사는 마을로, 입향조가 건립하였다는 봉남 서당이 있어 깊은 역사를 말해 준다.
덕미 1리는 남원 양씨의 집성촌이다. 1998년 현재 89가구 중 절반이 양씨들이다.마을에는 남원 양씨 17대조인 양퇴조가 후손들을 위해 지은 정자인 퇴휴정(退休亭)이 있다.
양서 1리와 달제 2리는 경주 최씨의 집성촌이다. 양서 1리는 1998년 현재 67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로, 50여 가구의 최씨들이 살고 있으며, 달제 2리는 작은 산촌 마을로 20가구의 최씨들이 살고 있다.
양서 2리 진두 마을은 밀양 박씨의 집성촌이다. 1998년 현재 총 42가구 중 박씨들이 40여 가구에 달한다.
신락 1리와 신락 2리는 경주 이씨의 집성촌이다. 이 두 마을은 비교적 규모가 큰 편이며, 신락 1리는 1998년 현재 총 83가구 중 이씨가 50여 가구이고 신락 2리는 123가구 중 이씨가 80여 가구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