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7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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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比安面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영진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 있는 집성촌.
[개설]
비안면은 현재 14개의 법정리와 23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시대 비안현의 현청이 있던 곳이었기 때문에 역사 유적과 전통 있는 촌락이 많다. 비안면에는 밀양 박씨, 선산 김씨, 경주 손씨, 경주 이씨, 함창 김씨, 초계 변씨, 병산 박씨, 순천 장씨, 절강 장씨, 진주 소씨, 경주 김씨, 안동 김씨, 청주 이씨, 남양 홍씨, 김해 배씨 등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조선 시대 비안현을 대표하는 성씨가 변·이·장이라고 하였는데, 실제로 비안면에는 초계 변씨와 순천 장씨가 오랫동안 세거해 왔다.
[형성 및 변천]
밀양 박씨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이두 1리와 이두 2리에 모여 살고 있다. 이두 1리 내두 마을은 1519년 사문진사공파 박길상이 입향하여 세거하면서 집성촌이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기묘사회 때 박길상과 그의 아들 성균관 진사 박울이 이곳에 함께 유배되어 입향하였다고 한다. 이후 마을이 팽창하면서 이웃한 이두 2리 외두 마을로 분거하여 오늘날 두 마을 모두 밀양 박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선산 김씨는 옥연 1리에 많이 살고 있다. 임진왜란 전에 김재경이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의 노연 마을에서 이곳으로 입향하여 세거하면서 집성촌이 되었다고 전한다.
경주 손씨와 경주 이씨는 옥연 2리에 많이 살고 있다. 조선 선조 때 이희수가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한다. 일설에는 경주 손씨 등이 함께 입향하였다고도 전한다.
초계 변씨는 용남 1리 용동 마을에 모여 산다. 약 500년 전에 초계 변씨 10대손인 감무공파 변용의 후손들이 이곳에 입향하여 세거하였고, 이후 주변으로 확산되었다.
순천 장씨는 용남 2리에 모여 산다. 원래 영양 남씨가 개척한 마을이라고 전하나 지금은 순천 장씨가 대성을 이룬다. 1615년 훈도공파 장계가 입향하여 15대째 세거하고 있다. 장씨는 이 마을을 본거지로 옛 비안현 영역이었던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와 안정리, 구천면 미천리, 단촌면 하화리 등에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하고 있다.
함창 김씨와 초계 변씨는 용천 1리 뒷천 마을에 많이 살며, 병산 박씨는 용천 2리 서원 마을에 모여 산다. 뒷천 마을은 조선 세종 때 김고가 의성 교수(義城敎授)에 제수되어 봉직하다 만년에 입향하여 후학을 양성하였다는 설이 있다. 뒷천 마을의 초계 변씨는 이웃한 용남 1리 용동에 세거하던 변씨들이 이거하여 집성을 이루었다고 한다. 뒷천 마을과 인접한 서원 마을은 약 1500년 경 박충인이라는 선비가 병호 서원(屛湖 書院)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면서 병산 박씨의 세거 집성촌이 되었다고 전한다. 병산 박씨는 고려 때 문하 시중을 역임하고 벽상 공신으로서 병산군에 봉해졌던 박우(朴瑀)의 후손들이며, 비안의 재지 세력으로 성세를 누렸다.
밀양 박씨, 절강 장씨, 진주 소씨는 외곡리에 모여 산다. 더 구체적으로는 외곡리의 3개 자연 촌락 중 외곡 마을에는 밀양 박씨, 별골 마을에는 절강 장씨, 자포골 마을에는 진주 소씨가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절강 장씨는 약 200년 전에 별골에 입향한 장이징이 입향조이고, 진주 소씨는 약 450년 전에 입향한 쌍봉공파 소필경이 입향조이다.
경주 김씨는 자약리와 산제 1리에 많이 산다. 자약리의 도내기 마을은 1600년대 초 구암공파 김일이 입향하여 세거하면서 집성촌이 되었다. 그 전에는 병산 손씨와 남양 홍씨들이 살았다고 전한다. 자약리와 인접한 산제 1리에도 경주 김씨 구암공파들이 세거하면서 집성촌이 되었다.
안동 김씨와 청주 이씨는 산제 2리에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두 성씨의 입향조와 입향 연대는 미상이나 지금도 마을에는 두 성씨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청주 이씨는 고려의 개국 공신 이능희(李能希)를 시조로 하는 희귀성이기도 하다.
남양 홍씨는 화신 1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고려 중엽인 1250년 경주 이씨 8대조 이지태가 마을을 개척하였고, 조선 중엽에 남양 홍씨에 이어 밀양 박씨, 비안 박씨들이 입향하여 세거지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남양 홍씨가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김해 배씨[분성 배씨]는 쌍계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임진왜란 때 금군 호위장으로 큰 전공을 세운 배경운이 도원 2리의 곡현 마을로 입향한 이래 그 후손들이 이거하여 세거 집성촌이 되었다. 이 마을을 비롯한 의성 지역의 김해 배씨들을 특별히 곡현 배씨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황]
비안면의 집성촌은 이두 1리, 이두 2리, 옥연 1리, 옥연 2리, 용천리, 용남 2리, 외곡리, 자약리, 산제 1리, 산제 2리, 화신 1리, 쌍계리 등이다.
이두 1리와 이두 2리는 밀양 박씨들의 집성촌이다. 『의성 군지』에 따르면 이두 1리에는 1998년 현재 62가구 대부분이 박씨이고, 이두 2리는 136여 가구 중 박씨들이 70여 가구에 달한다. 이두 2리에는 학림재와 백학 서당 등 밀양 박씨들의 역사적 기념물이 위치하고 있다.
옥연 1리는 1998년 현재 총 47가구 중 선산 김씨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마을이다. 마을에 입향조 김재경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인 숭덕사가 있다.
옥연 2리는 경주 손씨와 경주 이씨의 집성촌이다. 1998년 현재 총 71가구 중 손씨가 43가구, 이씨가 26가구 가량이다. 마을에는 이 마을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활약한 손복의 행적을 기리는 표의각이 있다.
용남 1리 용동 마을은 초계 변씨가 비안에 최초로 입향한 마을이다. 1998년 현재 34가구의 작은 마을로 변씨는 15가구 정도 살고 있다.
용남 2리는 순천 장씨의 집성촌이다. 15대째 세거하고 있으며, 1998년 현재 주민 88가구 중 60여 가구가 장씨이다.
용천 1리 뒷천 마을은 함창 김씨와 초계 변씨의 집성촌이고, 용천 2리 서원 마을은 병산 박씨의 집성촌이다. 1998년 현재 용천 1리와 용천 2리를 합쳐 70가구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함창 김씨가 24가구, 초계 변씨가 21가구, 병산 박씨가 20가구 정도이다. 뒷천 마을과 인접한 서원 마을에는 옛날에 병호 서원(屛湖 書院)이 있었으나, 지금은 이 마을 출신 의병들의 뜻을 기리기 위한 유허비만 남아 있다.
외곡리는 밀양 박씨, 절강 장씨, 진주 소씨의 집성촌이다. 4개의 자연 촌락에 1998년 현재 80가구가 살고 있는데 박씨, 장씨, 소씨가 약 20여 가구씩 섞여 살고 있다.
자약리와 산제 1리는 경주 김씨의 집성촌이다. 자약리 도내기 마을에는 1998년 현재 주민 84가구가 살고 있는데 김씨가 50가구나 된다. 산제 1리에도 62가구의 주민 중 김씨가 40가구이다.
산제 2리는 안동 김씨와 청주 이씨의 집성촌이다. 1998년 현재 약 109가구가 사는 큰 마을로, 김씨가 50가구이고 이씨가 40가구 정도이다.
화신 1리는 남양 홍씨의 집성촌으로 1998년 현재 30가구의 홍씨들이 살고 있다.
쌍계리는 175가구가 살고 있는 큰 마을로, 김해 배씨가 90여 가구나 된다. 마을에는 배치용 처 순흥 안씨의 정려비와 비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