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8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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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一元 |
이칭/별칭 | 계산(桂山),경지(景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분토 2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643년 - 전일원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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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59~1674년 - 전일원 무과에 급제|관직 업무 종료 |
몰년 시기/일시 | 1720년 - 전일원 사망 |
거주|이주지 | 의성현 - 경상북도 의성군 |
묘소|단소 | 용수동 -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실업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용궁(龍宮) |
대표 관직 | 용양위 부사과 |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경지(景之). 호는 계산(桂山). 아버지는 증 통정대부 군자감 정(贈 通政大夫 軍資監 正) 전상량(全尙亮), 어머니는 오정수(吳淨水)의 딸 숙부인(淑夫人) 해주 오씨(海州 吳氏), 할아버지는 훈련원 주부(訓鍊院 主簿)를 역임한 전의복(全義復), 증조할아버지는 전희남(全希男), 부인은 정산흘(鄭山屹)의 딸 숙부인 연일 정씨(延日 鄭氏)로 알려져 있다.
[활동 사항]
전일원(全一元)[1643~1720]은 1643년(인조 21) 출생하였다. 큰 절개와 효성이 있었으며, 행동거지에 독실함이 있었다. 기일 날이 되면 꿩이 부엌으로 날아 들어와 이를 제수용으로 사용하니, 주위 사람들 중 경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문무를 함께 갖추었으며, 현종조[재위 1659~1674] 무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이 병절교위 용양위 부사과(秉節校尉 龍驤衛 副司果)에 올랐다고 한다. 1720년(숙종 46) 세상을 떠났다.
[묘소]
『전씨대동보(全氏大同譜)』에는 용수동(龍水洞)[현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실업리 소재]에 묘소가 자리한다고 기록해 놓았다.
[상훈과 추모]
영조 연간 병조 참의(兵曹 參議)에 증직되었다. 독립 운동가이자 유학자인 이만규(李晩煃)가 묘갈(墓碣)을 찬(撰)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