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018 |
---|---|
한자 | 李苾坤 |
이칭/별칭 | 형원(馨遠),죽포(竹浦)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오상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명구 |
[정의]
개항기 의성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형원(馨遠). 호는 죽포(竹浦). 동강(棟岡) 이희정(李希程)의 후예이다.
[활동 사항]
이필곤(李苾坤)[1864~1907]은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오상동 출신이다. 을미의병 때 의병장 김상종이 의성에서 창의하자 이필곤은 주변 청장년들에게 통문을 돌려 의병을 모아 함께 김상종 의진에 참여하였다. 김상종 의진의 중군을 역임하기도 하였던 이필곤은 비봉산 전투에서 패배한 뒤 김상종 의진이 해산되자 잔병을 수습하여 의병부대를 재편성하고 항쟁을 계속하였다.
의성 의진을 계승한 이필곤의 의병 항쟁은 현재 구체적으로 현재 알려진 바가 없으나 이필곤 휘하 의병 부대의 부대원 명부인 『이필곤 부대 명부』를 보면, 이필곤이 적어도 50명이 넘는 의병을 통솔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이필곤이 의병을 해산하면서 의성 군수에게 총기를 반납한 것을 기록한 『오동총납상기(梧洞銃納上記)』에 의하면 이필곤이 이끈 부대가 최소한 21정의 총으로 무장한 의병 부대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907년 7월 이필곤은 일본군 수비대에 체포되어 안동 형무소에 수감 중, 일본군의 회유에도 끝내 굴하지 않고 43세에 총살당하여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건국 포장이 추서되었고, 1990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