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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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明出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안계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명구 |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명출(金明出)[1893~1987]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안계리 출신으로, 비안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비안면 독립 만세 시위는 쌍계 교회 중심으로 일어났다. 쌍계 교회 박영화 목사 등 추진 세력은 밀의를 거듭하면서 3월 13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김명출을 비롯한 배도근·이일만·박세길 등을 동지로 규합하고 태극기 제작에 들어갔다. 그런데 거사일 하루 전인 3월 12일, 비안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이 학교 뒷산에서 만세 운동을 벌이자 이들은 거사 일을 앞당겨 오후 1시경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학생 50여 명을 비롯한 200여 명의 시위 군중들은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동네를 행진하였다. 그러나 오후 4시쯤 비안 주재소에서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박영화를 비롯한 주동자 5명이 검거되었으며, 군중들은 해산 당하였다. 그 후 관련자 다수가 체포되어 17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김명출은 이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17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죄 명목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01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