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0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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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永新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박영신(朴永新)[1891~1942]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쌍계동 쌍계 교회의 목사 박영화(朴永和)의 동생으로 쌍계동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를 위한 구체적 계획에 참여하였다. 박영신은 3월 12일 자신의 집에서 형 박영화를 비롯하여 박영달·배중엽·배달근 등과 함께 200장 정도의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런데 12일 오전 비안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이 학교 뒷산에서 만세를 부른 뒤 정오 무렵 마을로 돌아오자 동민들은 만세 시위에 들어갔다. 그의 집 앞에 모인 마을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 만세를 외친 후 동리를 시위 행진하였고, 뒷산에 올라가 독립 만세를 외치고 해산하였다.
급보를 받은 의성 경찰서에서는 조선인 경부와 순사 부장을 급히 파견하여 비안 주재소 경찰과 함께 시위 주동자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여 모두 18명이 기소되어 형을 받았다. 그는 5월 22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1년 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3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