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0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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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寅郁 |
이칭/별칭 | 박주욱(朴宙郁)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박인욱(朴寅郁)[1896~1934]은 박주욱(朴宙郁)이라는 다른 이름도 전한다.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2일 비안면 쌍계동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박인욱은 3월 12일 박영화·박영달·박영신·배중엽·배달근 등과 함께 200장 정도의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런데 12일 오전 비안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이 학교 뒷산에서 만세를 부르고 정오 무렵 마을로 돌아오자 교인들과 동민들은 만세 시위에 들어갔다. 도로에 모인 마을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자, 이를 흔들면서 독립 만세를 외친 후 동리를 시위 행진하였고, 뒷산에 올라가 독립 만세를 외치고 해산하였다.
3월 12일 오후 4시 급보를 받은 의성 경찰서에서는 조선인 경부와 순사 부장을 급히 파견하여 비안 주재소 경찰과 함께 시위 주동자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여 모두 18명이 기소되어 형을 받았다. 박인욱은 1919년 4월 17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공소하였으나 5월 14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