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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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在寅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재인(李在寅)[1907~1964]은 의성군 의성읍 출신으로, 1935년 1월경 의성읍 교회 청년을 중심으로 결성된 청년 면려회(靑年勉勵會)를 항일 운동 단체로 조직 개편하였다. 이재인은 의성읍 교회의 목사인 유재기(劉載奇)가 “조선 민족은 현재의 비경(悲境)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조선을 일본의 손에서 되돌려 찾아내는 일 외에는 없으며 이 같은 대업은 우리들 청년으로 하여금 비로소 성취할 수 있으므로 소년들에게 이 같은 뜻을 설명해주고 그의 민족 의식을 자각시키지 않으면 안되는데 이를 위하여 먼저 청년 면려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여 계사부(稽査部)를 조사부(調査部)로 개칭하고, 농촌부(農村部)·체육부(體育部)를 신설하였다.
그래서 조사부는 회원의 동정 및 일본 경찰의 시찰 상황을 탐사·보고하고, 농민부는 농민을 상대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며, 체육부는 체육을 통해 정신적·육체적으로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며, 종교부는 매월 첫째 주에 특별 기도회를 가져 독립 성취를 기원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여 민족적 단결로 독립을 성취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이재인은 교회 인사들에게 개혁안의 취지를 설명하여 찬동을 얻은 후 1935년 1월 말 교회 정기 총회에서 위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유재기 등과 함께 체포되어, 1939년 5월 수개월간 옥고를 치르다가 기소 유예 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이재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