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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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達模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창길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60년 6월 25일 - 최달모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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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7일 - 최달모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독립 만세 운동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10일 - 최달모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8월형을 선고 받음 |
몰년 시기/일시 | 1932년 6월 20일 - 1932년 6월 20일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최달모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최달모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창길리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창길리 |
활동지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창길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3·1 운동 |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최달모(崔達模)[1860~1932]는 전응주와 함께 주민 50여 명을 이끌고 마을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만세 시위를 벌였다. 그후 창길(倉吉)·삼춘(三春)·박곡(朴谷)·석탑(石塔)·신월동(新月)·화령(花寧) 등 부근의 각동에서 운집한 8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고, 이튿날 밤에도 창길동에서 신월동까지 만세 시위를 벌였다. 3월 19일에는 장날을 기해 전개된 도리원 시위에 참여하였다. 최달모는 창길동을 출발하여 괴산·도옥(都玉)·신안(新安) 등을 거쳐 1,0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봉양면(鳳陽面) 사부동(沙阜洞)까지 만세 시위를 벌이고 도리원 시위에 합류하였다.
도리원 시위에서는 수천 명으로 이루어진 시위대는 몽둥이와 돌을 들고 도리 주재소로 몰려가 그곳을 포위하여 투석으로 건물을 파괴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경의 무차별 총격으로 권해운(權海雲)이 현장에서 순국하였고, 10여 명이 부상을 당하고 시위 군중은 해산되었다. 최달모는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1919년 5월 10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최달모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