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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968
한자 漢陽趙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집필자 전민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464년 - 조문림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536년 - 조문림 사망
본관 한양 조씨 - 서울특별시
입향지 한양 조씨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세거|집성지 세거지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성천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세거지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우천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세거지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덕리 지도보기
관련 유적 자계정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관련 유적 자계선생한양조공유허비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관련 유적 구암정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성천리
관련 유적 자암정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덕리
관련 유적 서은정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우천리
성씨 시조 조지수(趙之壽)
입향 시조 조문림(趙文琳)

[정의]

조지수(趙之壽)를 시조로 하고 조문림(趙文琳)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한양 조씨(漢陽 趙氏)의 시조 조지수(趙之壽)는 고려 중기에 조순대부(朝順大夫) 첨의중서사(僉議中書事)를 지냈고 아들 형제를 두었는데, 첫째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조인재(趙麟才), 둘째는 쌍성총관(雙城摠管) 조휘(趙暉)이다.

조인재의 아들 충무공(忠武公) 조영무(趙英茂)는 조선 개국공신으로 정승을 지냈고 태종묘(太宗廟)에 배향되었으며, 조인재의 손자 조세진(趙世珍)은 예의판서(禮義判書) 한산백(漢山伯)과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 조돈(趙暾)이다. 조돈의 아들 조인벽(趙仁璧)은 아버지와 함께 홍건적(紅巾賊) 격퇴에 큰 공을 세웠다. 또한 조휘(趙暉)의 아들 조양기(趙良琪)는 총관 겸 부원수(副元帥)를 지냈다.

한양 조씨(漢陽 趙氏)로 처음 영천에 입향한 사람은 조인벽(趙仁璧)의 증손인 부사(府使) 조금(趙嶔)의 셋째 아들 조문림이다.

[입향 경위]

정릉참봉(定陵參奉)을 지낸 조문림이 영천으로 입향한 동기와 연대는 불분명하다. 다만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인해 공의 3종질인 조광조(趙光祖)가 화를 입게 되자 세태에 염증을 느끼고 은둔을 결심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문림이 영천을 우거지로 선택한 이유는 경주 양동(良洞)에 있는 처가를 왕래하면서 평소 산수가 좋은 영천시 자양면(紫陽面)을 눈여겨 보아둔 때문으로 추정된다.

[현황]

입향 이후 인물을 향지(鄕誌) 『영양지(永陽誌)』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성종(成宗) 때 문과(文科)로 부사(府使)에 이른 조금(趙嶔), 입향조 조문림, 충순위교위(忠順衛校尉) 조임(趙恁), 참봉(參奉) 조원서(趙元緖), 증(贈) 공조참의(工曹參議) 조침(趙忱),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으로 훈련원봉사(訓練院奉事)인 조종악(趙宗岳), 교수(敎授) 조종대(趙宗岱), 무신년에 창의를 한 조태한(趙泰漢), 호군(護軍) 조흥한(趙興漢), 철종(哲宗)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조문교(趙文敎), 학행으로 이름난 조석한(趙錫漢)과 조대경(趙垈慶), 조여정(趙如鼎), 조중교(趙重敎) 등이 있다.

한양 조씨는 주로 북한 지역인 황해도와 함경도에 큰 집성촌이 있으며, 충청북도 청원군 강내면 연정리,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와 유포리, 전라남도 무안군 석곡면 일원,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완전리와 영양군 일월면 주실 마을 등에 100여 호 이상 세거하고 있다.

영천 지역에는 금호읍 성천리조종악(趙宗岳)의 후손이 세거하고 있으며, 청통면우천리에는 조종대(趙宗岱)의 큰아들 조홍적(趙弘績)의 후손이, 신덕리에는 조종대(趙宗岱)의 둘째아들 조홍기(趙弘紀)의 후손이 세거하고 있다.

[관련 유적]

영천시 자양면에는 입향조를 추모하는 자계정(紫溪亭)과 자계선생한양조공유허비(紫溪先生漢陽趙公遺墟碑)가 있으며, 금호읍 성천리조종악(趙宗岳)의 구암정(龜巖亭), 청통면 신덕리조종대(趙宗岱)의 자암정(紫巖亭), 청통면 우천리에 조홍기(趙弘紀)의 서은정(西隱亭)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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