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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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년(순조 18) 이만운이 구미 지역의 천생산성 일대를 유람하고 쓴 기행문. 이만운(李萬運, 1736~?)은 조선 정조(正祖, 1752~1800) 때의 학자로 자는 원춘(元春), 호는 묵헌(默軒)이다. 박학하여 천문·역산(曆算)·지리·명물(名物) 등에 능하였다. 「유천생산기」는 이만운이 박여(朴汝)·엄익치(嚴益稚)와 더불어 정월 보름날 신동·황상동·금전동·장천면에 걸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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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구평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임진왜란 당시 진을 아홉 번 옮겨 가며 싸운 곳이라고 해서 구진벌(九陣伐)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거북의 등처럼 딱딱하고 거친 땅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또 밭으로 돌아간다는 귀전부리(歸田夫里)에서 나온 이름이라고도 한다. 구준벌, 귀전벌이라고도 한다. 구진벌은 천생산에서 남쪽으로 약 2㎞쯤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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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장씨 세계(世系)에 따르면, 시조를 장금용으로 하고 있으며 그 이후 15세에 해당하는 장우(張俁)가 인동에 처음 들어 온 입향조이며, 19세에 해당하는 장열과 장희의 후손들이 신동 마을의 주류를 이루었다. 다음의 세계표는 인동장씨 세계를 간추려, 인동 입향조와 신동 입향조를 표시한 것이다. 〈표〉인동장씨 세계표 중 인동 입향조와 신동 입향조 19세인 열을 판서공,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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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의 벼농사는 다른 농촌마을과 같이 3월경 얼었던 땅이 녹으면 한 해 농사가 시작된다. 먼저, 논갈이를 하기 전에 거름을 뿌리고 경운기나 트랙터로 논을 간다. 4월 하순이 되면 볍씨를 물에 소독약과 함께 담가 소독한다. 5월 초가 되면 못자리를 만든다. 못자리는 흙이 찰지고 햇볕이 잘 드는 곳, 관리가 편한 곳, 온도가 균일한 곳, 물대기가 쉬운 곳에 만든다. 모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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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의 누에농사는 마을에서 자생적으로 재배하던 작물이 아니었다. 1962년 국가의 잠업증산 5개년 계획이 수립되어 1963년부터 마을에서 누에를 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뽕나무를 심으며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67년부터이다. 이때부터 밭과 근처 야산에 칠곡군에서 묘목을 분양받아 온 뽕나무를 심고 각 집마다 잠실(蠶室)을 짓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 후반에는 마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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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의 장씨들이 문중 성원으로서 참여하는 문중행사는 다채롭다. 신동에 위치한 양양재에서 모시는 석채에서부터 시조제의 참여에 이르기까지 문중의 현조를 모시는 향사가 연중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각종 행사에 참여하여 인동장씨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랑스러운 조상의 후예라는 긍지를 갖게 된다. 특히 석채라는 형식의 조상 모시기가 눈길을 끈다. 통상 불천위로 모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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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 천생산에 위치한 바위. 미덕암은 천생산성 서쪽에 불쑥 튀어나온 큰 바위를 말한다. 천생산성은 임진왜란 때 망우당 곽재우(郭再祐) 장군이 의병을 모아 왜적을 물리친 곳으로, 천생산 중에서도 천연으로 깎은 듯이 험준한 곳에 위치한다. 곽재우 장군의 신출귀몰한 전법으로 난공불락의 요새지였다. 이에 왜군은 인근 민가로 내려가서 촌로에게 이 산성에서 제일 귀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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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주로 ‘새올(월)’로 불린다. 신곡(新谷)은 신동 마을 전체를 이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새로운 골을 이루었다는 뜻이다. 마을 안에는 못둑마, 웃마와 아랫마, 가리마, 새마 등의 작은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 칠곡군(漆谷郡) 가산면(架山面)과 경계한 구미시의 최동단 마을이다. 서쪽으로 구평동(九坪洞)과 접하고 있으며 행정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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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행정구역. 산동읍은 도중리, 동곡리, 백현리, 봉산리, 성수리, 송산리, 신당리, 인덕리, 임천리, 적림리 등 10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도중리는 도림(道林)과 중평(中坪)에서 한 음절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동곡리는 동촌동과 질곡동에서, 백현리는 자연마을인 백곡(柏谷)과 웅현(熊峴)에서, 봉산리는 자연마을인 봉림(鳳林)과 오산(梧山)에서 한 음절씩 따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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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00년전(1424년경) 강릉유씨(江陵劉氏[劉仁悌, 字 而恭, 號 松齋, 大提學]가 인동(仁同) 고을에 처음 들어와 정착하였다. 뒤이어 함안조씨(咸安趙氏)[趙淵, 字 靜鄕, 號 耐軒, 贈 戶曹參議]가 이거(移居)해 왔다. 1580년경 인동장씨(仁同張氏)[張顯道, 字 德優, 號 月浦 贈 吏曹參判]가 이거해 와서 ‘새로운 마을’을 형성하게 되면서,‘새월(새올)’즉 신곡(新谷)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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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우리나라 농촌마을의 대표 작물이었던 벼는 주민들의 주요 식량이자 현금 소득원이었다. 신동도 벼농사가 주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마을에 남아 있는 잠업 관련 건물들을 보면, 신동은 1950년대 이후 세 차례의 농작물의 변화가 있었다. 우선 벼농사가 주된 것이었으며 이와 함께 보리, 담배, 누에, 참외가 그 쇠퇴를 같이 하였다. 보리는 누에를 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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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당리는 서울나들, 원당(院堂), 반월리(半月里), 뒷골, 우항(牛項), 감말(甘末)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신당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감미동, 우항동, 관동, 복래동, 원당동, 신동, 헌덕동, 구미동 각 일부를 병합하고 신동과 원당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서울나들은 영남 선비들이 서울로 과거 보러 갈 때 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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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 신동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주로 ‘새올(월)’로 불린다. 신곡(新谷)은 신동 마을 전체를 이르는 또 다른 이름으로, 새로운 골을 이루었다는 뜻이다. 마을 안에는 못둑마, 웃마와 아랫마, 가리마, 새마 등의 작은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 칠곡군(漆谷郡) 가산면(架山面)과 경계한 구미시의 최동단 마을이다. 서쪽으로 구평동(九坪洞)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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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시설인 신동지(사각지)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수리계는 비공식적 조직이지만 신동지에 의탁하여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모두 가입되어 있다. 신동지는 못둑마에 있는데 조성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장씨들이 들어온 이후 이들의 주도로 생겨났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추측은 현재도 신동지의 소유가 신동 마을로 되어 있으며, 1970년대 농지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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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의 법정동인 인의동·황상동·신동·구평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인동동은 구미시 동쪽에 위치한 동으로, 1978년 2월 15일 구미시 승격과 동시에 칠곡군 인동면에서 구미시 인동동이 되었다. 인동동은 ‘어진[仁] 사람들이 한마음[同]으로 화합하며 살아가는 동네’라는 뜻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칠곡군 인동면이 되었다. 1977년 2월 15일 구미 출장소 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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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있는 인동동 관할 행정기관. 경상북도 구미시를 구성하고 있는 2개 읍(선산읍·고아읍), 6개 면(무을면·옥성면·도개면·해평면·산동면·장천면), 19개 동(송정동·원평1동·원평2동·지산동·도량동·선주원남동·형곡1동·형곡2동·신평1동·신평2동·비산동·공단1동·공단2동·광평동·상모사곡동·임오동·인동동·진미동·양포동) 중 인동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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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전해 오고 있다. 자연마을로 교동(校洞), 중리(中里), 남산(南山), 마차골[馬車谷] 등이 있다. 교동은 옛 향교가 있었다는 연유에서, 중리는 인동장씨 중리파의 유허지(遺墟地)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산은 인동장씨 남산파가 세거한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고, 마차골은 임진왜란 당시 마차가 집결한 곳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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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재사(齋舍)가 많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이다. 외국인이 볼 때는 일년내내 비워둘 집을 왜 짓느냐고 하면서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재사는 숭조목족(崇祖睦族)이라는 절대 가치의 상징이다. 이것은 우리의 자랑이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조상을 위한 재사 한 채를 짓기 위해서 모든 종인(宗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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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온갖 사물을 이해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여기서 전통적인 마을의 모듬살이를 이해하기 위해 채택한 방법 중 하나가 경관(景觀, Landscape)을 통한 이해이다. 마을 경관은 기록이 없는 마을의 역사와 주민의 삶의 양태를 보여준다. 집성마을은 일반적으로 다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종가(宗家)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 다음으로 이름난 조상과 관련된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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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의 참외농사는 시작이 1973년 칠곡군 석적읍 포남3리에서 참외농사를 짓고 있던 조수완와 장모씨가 마을에 들어와 참외농사를 시작하였다. 1973년 첫해는 원목을 심고 키우다가 1974년부터 원목에서 접목을 하여 재배를 하였다. 이 때 마을에서 장광수, 장석우, 장종수, 장태인, 장세중 씨가 참외농사를 조수완 씨에게 배우면서 시작하였다. 이들은 기존의 벼, 보리의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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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마을 사람들은 타성들과 위세 경쟁을 하지만 같은 성씨 내에서도 파문중 그리고 마을 간에 위세 경쟁을 한다. 신동 사람들은 인동 일대에 자리 잡은 인동장씨 집성마을의 위세 순위에 다음과 같이 자랑한다. ‘일 신동, 이 남산, 삼 오태, 사 각산, 오 대실’이라고 한다. 인근의 인동장씨 집성마을 가운데 신동이 가장 명성이 높다고 자랑하는 것이다. 그 연유를 물어보면 ‘신동에서 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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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송댁(여, 94세) 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신 이 목조 기와집은 신동 마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전통 가옥이다. 이 집은 일자형(一字形)의 사랑채와 안채, 아래채, 마구간채가 튼 구(口)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 기와집인데, 평면은 좌측에 부엌 1칸을 두고 우측으로는 사랑방 2칸과 사랑마루 1칸을 연접시켰으며 전면(前面)에는 쪽마루를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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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 인동 8경 가운데 2경과 3경인 봉두조하(鳳頭朝霞), 황상숙무(凰桑宿霧)에서 따서 봉상동(鳳桑洞)이라 하였다. 행정상 명칭은 황상동(黃桑洞)으로 황상산(黃桑山) 밑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2013년 1월 16일 구미시 고시 제2013-11호에 의해 한자 지명을 황상동(凰顙洞)으로 변경하여, 일제 강점기 왜곡되었던 명칭을 원래 지명으로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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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산이 비스듬하게 자리 잡고 있어 횡산(橫山)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 신동(新洞), 대방골[大方谷], 도롱골, 말골 등이 있다. 신동은 새로 생긴 마을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대방골의 이름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대방초등학교 뒤에 큰대방골이 있었으나 없어지고 지금의 대방골, 즉 작은대방골에 새로운 동네가 생겼다. 도롱골은 약 500년 전 이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