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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는 마을 최초의 과수작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C010203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동 신동(새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삼문

신동의 참외농사는 시작이 1973년 칠곡군 석적읍 포남3리에서 참외농사를 짓고 있던 조수완와 장모씨가 마을에 들어와 참외농사를 시작하였다. 1973년 첫해는 원목을 심고 키우다가 1974년부터 원목에서 접목을 하여 재배를 하였다. 이 때 마을에서 장광수, 장석우, 장종수, 장태인, 장세중 씨가 참외농사를 조수완 씨에게 배우면서 시작하였다. 이들은 기존의 벼, 보리의 이모작에서 보리를 대체하는 상품작물로서 참외농사를 시작하였다. 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을 때 농사를 짓던 모든 토지에 참외농사를 하지 않고 토지의 일부를 시험삼아 시작하였다. 초기 경작면적은 1인당 700~1,000평을 하는 것으로 출발하였다.

이 때의 참외농사는 지금과 같이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노지에서 재배하는 것으로 조수완 씨에게 재배법을 배우다가 조수완 씨가 원래 고향으로 돌아간 후에는 북삼읍에서 참외농사를 짓던 일가 중 장호진 씨에게서 재배법을 배웠다.

당시 참외종자는 왜관의 흥농종묘와 중앙종묘에서 참외종자를 구입하다가 재배하였다. 참외종자는 1977년~1978년까지 ‘일반은천’을 사용하다가 이후 ‘신은천’이 수입되어 4~5일 정도의 수확기 앞당겨졌다. 1980년대 이후에는 ‘금싸래기’가 보급되면서 당도향상이 증가하였다.

참외농사는 1월 15일경 종자를 키울 포트를 만든다. 포트의 수량은 1000평당 2500포트 정도가 필요하다. 포트를 준비하고 3월 초순이 되면 트랙터로 밭갈이를 하고 3월 20일에서 4월 10일 사이에 종자를 심은 포트를 키우기 위해 모종할 자리를 만든다. 물을 적신 짚을 모종할 자리에 깔고 종자를 넣은 포트를 놓고 비닐을 쳐서 종자를 키운다. 참외를 모종하고 난 후 ‘끄쟁이’라 하여 서리를 방지하기 위해 모종한 비닐 위에 짚을 덮어 놓는다. 보통 35일 정도 키우며 4월 하순이 되면 모종한 것을 노지로 옮기기 시작한다. 이때가 수확할 때와 함께 가장 인력이 많이 필요할 때여서 집안의 어린 아이들까지 동원되어 일을 하였다. 노지에 다 옮긴 후에는 7일 간격으로 3~4회 정도 농약을 쳐서 병충해를 방지한다. 참외에 잘 걸리는 병은 만알병이라 하여 열매가 열리면서 잎이 말라 죽는 병으로 가장 많이 걸리는 병이었다. 이러한 만알병은 참외를 시작한 초기에 경작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었다. 4년이 지나면서 접목기술이 나와 만알병이 사라졌다. 접목을 하면 만알병의 발병율이 떨어지고 농약을 치는 횟수도 1회로 줄었다. 6월 10일에서 7월 10일 사이에 참외를 수확한다.

이러한 참외농사는 1980년대 중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것으로 변하면서 그 시기에 변화가 왔다. 기존에 모종을 할 시기인 1,2월이 11월 말로 앞당겨지면서 전반적인 재배기간이 빨라져 수확이 4월 20일경으로 2달 가까이 빨라졌다. 이렇게 수확이 빨라졌으나 출하는 참외의 소비가 많아지는 5월 말에 하였다.

수확이 끝난 참외는 크기와 당도에 따라 등급이 정해져 1Box(40㎏)당 3,000원에서 13,000원 가량에 출하되었다. 판매는 초기에 용산, 청량리, 수유리로 팔렸으며 이후 가락동농수산물시장으로 팔려 나갔다.

신동의 참외농사는 마을에서 시도한 최초의 과수작물로 1980년대 후반까지 마을에서 중요한 수입원으로 재배되었다. 이러한 참외농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한참 참외값이 좋을 때 참외 4개 가지고 서울을 다녀올 수 있는 차비가 되었다고 한다. 참외와 쌀의 가격을 비교하면 참외 1Box가 쌀 2가마니 160근 값과 같을 정도로 값을 제대로 받았다. 이렇게 주민들의 수입원으로 상당한 효자노릇을 하던 참외도 1980년 중반 이후 생산량의 증가로 가격이 떨어지자 하나, 둘 재배농가가 줄어들며 1980년대 후반이 되면 마을에서 참외가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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