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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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에 있는 우편, 체신, 금융 기관. 우체국은 국장의 지위에 따라서 4급(서기관국), 5급(사무관국), 6급(주사국), 7급(주사보국)으로 분류되거나 기능에 따라서 체신청, 우편집중국, 집배국, 무집배국으로도 분류된다. 또한 설립 주체에 따라 일반우체국, 별정우체국, 우편취급소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4급과 5급우체국은 총괄국으로서 기초자치 단체 단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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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인물 박근석의 송덕비(頌德碑). 박근석은 조선 말 중추원의관을 지낸 인물로서 여러 모로 백성들에게 시혜를 베풀었기에 주민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구미시 옥성면사무소 앞 공터에 박태훈 기념비와 함께 세워져 있다. 높이 143㎝, 너비 45.5㎝, 두께 15.5㎝의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팔작지붕의 덮개돌을 얹은 형태다. 덮개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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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옥성면장을 지낸 박태훈의 송덕비. 박태훈은 일제강점기 때 행정의 최하부 단위인 옥성면의 면장을 지낸 인물로서, 면장으로서의 치적과 공덕에 대하여 기념하기 위하여 주민들이 비석을 세웠다. 구미시 옥성면사무소 앞 공터에 박근석 실혜비와 함께 세워져 있다. 높이 144㎝, 너비 47㎝, 두께 17.5㎝의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팔작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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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에 있는 물웅덩이. 옥성면 주아리 마을 북서쪽 뒤로는 해발고도 520m의 옥녀봉이 있는데, 그 정상에는 항상 물이 고여 있어 이를 상시물이라 하였다. 옛날 하늘나라에 사는 선녀가 봄과 가을에 이곳 상시물에 하강하여 목욕하고 올라갔다고 전해지며, 고려시대에는 이곳에서 국태민안을 위하여 제사를 모셨다고 전해진다. 상시물이 있던 옥녀봉(520m)과 그 남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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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에 있는 옥성면 관할 행정기관. 경상북도 구미시를 구성하고 있는 2개 읍(선산읍·고아읍), 6개 면(무을면·옥성면·도개면·해평면·산동면·장천면), 19개 동(송정동·원평1동·원평2동·지산동·도량동·선주원남동·형곡1동·형곡2동·신평1동·신평2동·비산동·공단1동·공단2동·광평동·상모사곡동·임오동·인동동·진미동·양포동) 중 옥성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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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에 있는 자연 휴양림. 옥성자연휴양림은 주아리의 신산[해발 457m] 기슭에 자리한 주아지를 끼고 조성된 휴양림이다. 구미시가 첨단 산업뿐 아니라 역사와 전통을 가진 맑고 깨끗한 자연 경관을 지닌 도시라는 점을 부각하는 동시에 시민들에게 자연 친화적인 공간을 제공하고 구미시의 새로운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7년 11월 26일 개장하였다. 숲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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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튼튼한 학생,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 새롭게 탐구하는 학생, 예절 바른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24년 5월 6일 옥성공립보통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같은 해 9월 4일 개교하였다. 1941년 3월 31일 옥성국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83년 3월 3일 병설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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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에 있는 수령 280년의 왕버들. 버드나무 중에 가장 크고 웅장하게 자란다는 뜻으로 왕버들이라고 한다. 개울가와 호숫가 등지에 많이 서식하며, 습지에서 잘 자라 수원(水源)의 지표식물이기도 하다. 한자어로 하류(河柳) 또는 귀류(鬼柳)라고도 한다. 높이 20m, 가슴높이 둘레 1m 이상 자라며 나무껍질은 회갈색이고 깊이 갈라진다. 새 가지는 처음에 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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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 옥성초등학교에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 주아리 탑곡 삼층석탑은 현재 옥성초등학교 교정 화단 중앙에 있으나 이곳이 원위치는 아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석탑은 원래 동네 남쪽 형제봉 탑곡(塔谷)에 있었던 것을 옥성면사무소로 이건하였고, 그 후 다시 옥성지서로 옮겼다가 1964년 11월 1일에 현 위치로 이건한 것이다. 원 소재지에는 아직도 석탑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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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에 있는 조선 말 황두선(黃斗善)의 효자비. 황두선은 장수인(長水人)으로 영상(領相) 황희(黃喜)의 후손이며, 황충로(黃忠老)의 아들이다. 양친이 병환에 있으면 필요한 물품을 구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하였고, 한 번도 병석을 떠나지 않았다. 노환으로 양친이 별세하자 피눈물을 흘리며 여막(廬幕)을 짓고 3년간 시묘(侍墓)를 한 후에도 초하루 보름에 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