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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건 처 송씨 정려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2090
한자 盧景健妻宋氏旌閭碑
영어의미역 Gate Monument Erected to Praise Conduct of No Gyeonggeon's Wif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광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석비
양식 지붕형[屋蓋形]
건립시기/일시 1996년연표보기
관련인물 노경건|송씨(宋氏)
재질 사암(砂巖)
높이 133㎝
너비 44㎝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지도보기
소유자 안강노씨 종중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 노경건의 처 송씨의 정려비.

[개설]

송씨는 사인(士人) 노경건의 처로 임진왜란을 당하여 1593년(선조 26) 5월 상주(尙州)의 산중으로 부부가 함께 피난하던 도중 적을 만났는데 적이 남편을 해치려 하자 송씨(宋氏)는 전력을 다하여 대항하였다. 적이 남편을 살해하고 다시 송씨를 겁탈하려고 하자 송씨는 자신의 목을 베더라도 그들의 뜻을 따를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적이 송씨의 오른팔을 잘랐으나 굴하지 않고 오히려 꾸짖다가 피살되었다. 이에 조정에서 정려를 명하였다.

[건립경위]

1677년(숙종 3)에 조정에서 정려를 명하여 비를 세웠으나 구비는 훼손으로 인하여 파기되고 1996년 현재의 신비가 선산읍 독동리 안강노씨 문중 산 기슭에 동향으로 서 있다.

[형태]

받침돌 위에 비좌와 비신을 세우고 지붕돌을 구비한 형태이다. 비신은 높이 133㎝, 너비 44㎝, 두께 21㎝이며, 지붕돌은 높이 45㎝, 너비 76㎝, 두께 46㎝이며, 비좌는 높이 20㎝, 너비 73㎝, 두께 40㎝이다.

[금석문]

현재의 신비는 새로 조성한 돌난간을 돌려 보호하고 있다. 비의 앞면에 ‘학생경주노공휘경건지처열부여산송씨지정려비(學生慶州盧公諱景健之妻烈婦礪山宋氏之旌閭碑)’라 새겨져 있으며, 서체는 예서(隸書)이다. 글자의 크기는 10×12㎝이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때인 1593년에 부부가 피난 중 남편의 피살에 대항하다가 함께 피살을 당한 열부의 역사적인 정절을 전해 주고 있어 그 의의가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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