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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2023
한자 逢谷洞孝烈碑閣
영어의미역 Monument Building of Filial Piety and Chastity in Bonggok-dong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 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우인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0년 9월 4일연표보기 - 봉곡동 효열비각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91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봉곡동 효열비각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성격 비각
건립시기/일시 조선시대
정면칸수 2칸
측면칸수 2칸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 7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조선시대 비각.

[변천]

봉곡동 효열비각에는 효자 박진환(朴震煥, 1605~1650), 열녀 양주조씨(楊洲趙氏, 1696~1724), 열녀 함종어씨(咸從魚氏, 1778~1811)의 행적을 기리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세워진 비석과 편액을 보관하고 있다.

효자 박진환은 경상남도 밀양 사람으로 통덕랑(通德郞)을 역임하였으며 경주부윤 박수홍(朴守弘)의 장자이다. 아버지가 상주에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간병했으나 보람 없이 죽었다. 박진환은 3년간 몸을 돌보지 않고 시묘(侍墓)살이를 한 후 병을 얻어 46세에 죽었다. 1681년(숙종 7)에 정려가 내렸다.

열녀 양주조씨는 효자 박진환의 3대손 박항령(朴恒齡)의 아내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조태방이다. 병고에 시달리던 남편을 극진한 정성으로 간호하였으나 34세에 죽자 이튿날 남편을 따라 자결하였다. 1729년(영조 5)에 정려를 내렸다. 열녀 함종어씨는 효자 박진환의 8대손 박래은(朴來殷)의 아내이다. 남편이 1811년(순조 11) 갑자기 죽자 남편을 따라 죽었다. 이듬해인 1812년에 정려가 내렸다. 2000년 9월 4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9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봉곡동 효열비각은 낮은 기단 위에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로 건립되었는데,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전면에는 홍살을 세웠으며 측면과 배면은 심벽으로 막았다. 기둥은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고, 익공 장식을 하였다. 효자 박진환의 구비(舊碑)는 6·25전쟁 때 파괴되어 파묻혔던 것을 다시 찾아내 상부 절반을 비각에 세워두었으며, 두 열녀의 적색 편액은 아직도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2013년 현재 새로 조성된 밀양박씨 경주부윤공파 재실인 봉곡재에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3.12.31 소재지 수정 및 [형태] 보완 <변경 전>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 446-2 <변경 후>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 7 / 2013년 새로 조성된 밀양박씨 경주부윤공파 재실인 봉곡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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