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170
한자 鹿鳴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녹명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청도군 각남면 녹명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청도군 각남면 명동에서 청도군 각남면 녹명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2.82㎡
가구수 111가구
인구[남,여] 226명[남자 106명, 여자 120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녹명리풍각면각북면의 경계지점에 있으며 각남면의 북단에 있고 풍각면을 거쳐 창녕으로 가는 국도 20호선인 청려로와 각남면 사리를 지나 청도읍 유천으로 연결하는 길목에 있다.

[명칭 유래]

녹명리는 구만동(九萬洞)과 녹갈(鹿渴)이 합쳐서 형성된 마을이다. 구만 마을은 그 깊이를 알 수가 없는 구멍이 있는데 창녕의 화왕산과 통한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구멍을 구만으로 바뀌어 부른다고 한다. 또 사리골에서 내려온 하천이 구만동 앞에서 만나서 소를 이루고 크게 돌아가기 때문에 구만(九灣)이라는 뜻도 있고, 일설에는 임진왜란 때 만 명이 이곳에서 피난을 했기 때문에 구만(救萬)이라는 말도 하기도 한다.

녹갈(鹿渴) 마을은 노깔이라고도 하였는데 연유는 알 수 없고 일제 강점기에 한문으로 표기하면서 녹갈(鹿渴)로 표기하였다.

[형성 및 변천]

1832년 편찬된 『대구읍지(大邱邑誌)』에는 구만리(九萬里)와 녹갈리(鹿渴里)로 표기되어 있고 그 이전인 1768년에 편찬된 『밀주지(密州誌)』에는 동명이 나오지 않는다. 각남면은 고려 때 밀양군 풍각현 초동면이었다가 1684년 대구진으로 이관되었고, 1906년에 청도로 다시 이관되면서 각초동면과 내서면이 포함되었다. 이 당시 각초동면에 녹갈과 구만동이 포함되어 있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각남면이 되었고 구만리와 녹갈이 합해져서 녹명동이라 하였다. 1988년 녹명동녹명리로 개칭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연 환경]

천왕산 줄기와 화악산 줄기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다. 천왕산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녹갈과 밤갓소에서 멈추고, 화악산 서북쪽에서 내려온 부곡천이 구만동에서 천왕산 동쪽 희남골에서 발원한 물과 만나 청도천으로 흘러든 된다.

구만 마을의 서쪽에 죽바위라고 하는 약 8264㎡[2,500여 평]의 큰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중바위라고도 부르는데, 『밀주지』에는 승암(僧巖)이라고 쓰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하여도 인근의 초등학교에서 봄 소풍 장소로 많이 이용하였던 곳이다.

경지 정리가 잘 되어 있는 편이지만, 죽바위 앞에서부터 구만동 마을 아래까지 개울 건너편에는 경지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녹갈에는 일찍부터 사과 밭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현황]

2012년 7월 현재 면적은 2.82㎡이며, 총 111가구에 226명[남자 106명, 여자 12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각남면 신당리·사리, 서쪽은 풍각면 덕양리, 남쪽은 각남면 옥산리·함박리, 북쪽은 풍각면 송서리·이서면 가금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구만과 녹갈이 있다.

구만 마을과 녹갈 마을은 들 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형태이며, 넓은 밭에는 과수를 재배하고 있다. 마을에는 대단위의 돈사가 있다. 동서로 지방도 902호선이 가로지르고 있으며, 이 지방도를 따라 청도 공용 버스 터미널에서 풍각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는 1번 버스와 풍각 순환 버스가 녹명리를 지나간다.

구만 마을에는 진배기 장공장이 있고, 참치 가공 공장이 들어와서 청도의 유휴 인력을 흡수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