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5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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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基部落事件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1952년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 신기 부락 주민들이 빨치산에게 보복 희생당한 사건.
[역사적 배경]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은 해방 이후 청도 지역에서 사회 문화적 중심지 기능을 했으며, 고학력자나 재력가도 다른 지역보다 많아 좌익 인사들이 상당수 거주했다. 또한 비슬산 자락에 위치해 있어 빨치산들이 빈번하게 출몰하던 곳이었다. 이서면 수야리에는 비슬산 지맥 삼성산이 위치하고 있어, 해방 정국과 6·25 전쟁 기간 중 빨치산들이 활동하던 무대 중 한 곳이었다.
[경과]
1952년 3월 17일 12시경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 신기 부락에 삼성산에 있던 빨치산 약 20명이 습격해 왔다. 이때 마을 보안대 야간 경비원 2명이 빨치산 습격을 즉시 발견 후 1명은 공비를 쫓고, 다른 1명은 마을 주민들을 깨웠다. 전 주민이 신속하게 동원되어 죽창으로 공비들과 격투 끝에 빨치산 1명을 생포하여 경찰에 인계하였다.
빨치산 생포 사건이 있은 뒤 빨치산들은 이를 보복하기 위해 야밤에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신기 부락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경비원이 빨치산을 발견하고 즉각 경찰에 신고했으나 경찰 병력 부족으로 직접 추격을 못하고, 대항 사격만 하는 실정이었다. 빨치산들은 마을 입구에 보초병을 세워놓고, 집집마다 방화를 했다. 또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살상하고, 많은 재산을 약탈한 뒤 아침이 되어서야 물러갔다.
[결과]
신기 부락 사건 으로 신기 부락 주민들은 많은 인적·물적 피해를 입었다. 10여 명이 희생을 당했고 부상자가 속출했으며, 가옥 소실, 가축 도륙, 생활물품 약탈 등을 당했다. 사건 이후 마을에 육군 제875 부대가 토벌 작전을 위해 주둔하고, 사후 처리 방안이 이어지면서 안정화되었다.
[의의와 평가]
6·25 전쟁 중 인민군과 좌익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 희생자는 대략 12만∼13만 명에 이른다. 신기 부락 사건도 이러한 민간인 학살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