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3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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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錫駿 |
영어음역 | Jang Seokjun |
이칭/별칭 | 견가(見可),춘고(春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인호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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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 |
성별 | 남 |
생년 | 1813년 |
몰년 | 1868년 |
본관 | 인동 |
대표관직 | 좌승지 |
[정의]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견가(見可), 호는 춘고(春皐).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으로 동암(東巖) 장대방(張大方)의 5세손, 만인당(晩忍堂) 장지학(張趾學)의 현손, 장수형(張壽衡)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윤구(張胤矩), 아버지는 장호추(張好樞), 어머니는 이동혐(李東馦)의 딸로 광주이씨(廣州李氏)이다.
[활동사항]
장석준은 1852년(철종 3) 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부정자를 시작으로 승정원주서, 성균관전적, 사헌부장령, 군자감정 등을 역임하였다. 1861년 북평사(北評事)로 나가 옥사를 잘 집행하고 군역을 공정하게 부과하였으며 교역을 장려하니 고을 사람들이 송덕비를 세웠다.
1862년(철종 13) 10월 홍문록에 이름을 올리고 이듬해 도당록(都堂錄)에 등재되었다. 1864년(고종 1) 문신겸선전관을 거쳐 홍문관부교리로서 경연시강관으로 입시하였을 때 『효경(孝經)』의 가르침을 강조하였다. 봉상시정을 거쳐 사복시정으로 있을 때 1864년 10월부터 1865년 3월까지 사은겸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청(淸)에 다녀왔다. 이후 1866년(고종 3) 좌승지가 되었을 때 사직하고 귀향했다가 1868년(고종 5) 급환으로 사망하였다. 묘소는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오평리 매화정에 있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는 『춘고유고(春皐遺稿)』가 있으며 그 안에 시문, 서간문, 사행기록 등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