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부읍지(善山府邑誌)』의 ‘인물 고려조’에는 김훤술을 “본관이 해평(해평인)이다. 태조(太祖)를 도와 공을 세워 지위가 시중(侍中)에 이르렀다. 시호(諡號)는 장렬공(莊烈公)이다.”라고 적고 있다. 그는 일찍이 마을 주민들이 성황사에 안치하여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 그 흔적이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지금도 김훤술 석상은 마을 뒷개숲의 시중사(侍中祠)에 모...
전주최씨들은 해평 토성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가장 번성한 가문 중의 하나이다. 입향조는 휘(諱) 수지(水智)이다. 검재 최수지는 현풍현감, 비안현감을 거쳐 성종 조에 좌리원종공신(佐理原從功臣, 왕을 잘 보필하여 정치를 잘 하였다는 공으로 내린 훈명)이 되었으며, 해평 강산의 명승을 좋아하여 해평김씨 김영발(金英發)의 손자 사위가 되어 처향으로 거처를 옮긴 것이다. 전주최씨...
조선시대 중·후기 대표적인 해평 지역의 명현은 『일선지(一善志)』를 남긴 인재(訒齋) 최현(崔晛)이다. 인재(訒齋) 최현(崔晛)은 검재 최수지의 5세손이다. 좌찬성 심(深)의 아들로, 해평에서 1563년(명종 18)에 태어났다. 인재에 대한 전주최씨 족보의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소시(少時)에 학봉(鶴峰) 선생 문하에서 수학하고 후에 한강(寒岡) 선생에게 사사(師事)하여 유...
인재 최현의 아들인 최산휘(1585~1637)는 부친이 1627년(인조 5) 이인거(李仁居)의 모반에 관련된 혐의로 투옥되었을 때 무고함을 주장하는 소를 올렸으며, 부친이 투옥된 다음 해, 1628년(인조 6) 유효립(柳孝立)의 역모사건을 알려 영사공신(寧社功臣) 3등에 책록되고 평완군(平完君)으로 책봉되었다. 후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하사받은 전토(田土)와 노비...